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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말 Jan 31. 2022

02 나의 블루, 선명하다

나를 잊고 사는 건 그런대로 용이했다. 들어간 대로 나온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적당한 표정과 매무새, 반응, 대화. 관계를 스치기 위한 방법들이다.


‘타인의 세계를 받아들일 용기가 없어.’


그런 심산이었다. 관계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세계까지 안을 자신이 없었고, 덜컥 겁이 나 미리 선수 쳐본다. 관계는 성실함을 요하고, 그 성실함은 여유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니, 이내 도리질하게 된다. 그렇게 내 주변엔 사람이 없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마음의 한켠까지 용이해지긴 시간이 좀 걸렸다. 혹여 내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뇌는 항상 긴장했고, 집에 오면 이내 늪으로 들어가듯 무거워진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제법 능숙해진다. 그나마 집에 오면 나를 꺼내 보던 습관은 점점 줄어들고, 이제 꺼내 보던 그 공간엔 내가 없다.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지 않다. 그렇게 흐릿해진다.


등굣길에 선명한 하늘을 보며 생각한다.


‘어딘가에 있을 너는 알고 있을까? 알고 있을까..’


구질한 지금의 내가 앞으로도 구질할지 미리 알면 좀 나을까 싶어, 주술처럼 되뇌어본다. 그러다 보면 팔다리의 움직임만 인지한 채 현실과 아득해짐을 느끼고, 그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돌아오기 위해 시계를 본다. 9시 5분 전, 늦지 않기 위해 서두르고 이내 뛰기 시작한다. 길을 건넌다. 그리고 다시 그 선명한 하늘이 내 눈에서 쏟아져 내린다.


‘어?’


쏟아지는 하늘이 눈부셔 가리고 싶은데 팔이 안 움직인다. 그리고 이내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표정들이 제법 걱정스럽거나 심각해 보인다. 말의 내용이 들리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차 사고가 났나 보네, 많이 다쳐 보인다는데, 내 얘긴가? 아.. 그래서 팔이 안 움직이나, 근데.. 살아있나 보네?’


남 보듯 나를 보던 건조한 그 반응이, 그 와중에 이죽거리는 내 모습이 참 코미디다.


‘참.. 이렇게까지 한다고? 그래?’


이 생각까지 이르니 피식거리게 된다. 심보가 더 고약해진다. 나락의 순간에 선명한 하늘은 늘 함께했다. 나를 또렷하게 보던 그 하늘이 영 거북했다.











Thumbnail Photo by Henry & C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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