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게 또 빠르게 흐른 시간
22년 1월 10일,
150일 아기도 위대하다
아내 출산 전후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4개월이 됐다. 어쩌다 보니 근래엔 아이를 키우며 느낀 어려움을 토로하기만 했다. 실제 아이를 키우며 우리 삶을 돌아보고, 더 나은 어른이 되려고 고민하게 된 건 긍정적이다. 또 출산-육아로 이어지는 롤러코스터에서 넘어야 할 허들의 높이를 절감하며 현실 감각을 키운 것도 큰 성장이다. 아이가 건강한 삶을 살게 하려면 우리부터 잘 살아야 하는 게 맞아서다.
한편으론 아이 있는 삶이 넘어야 할 산이 끝없는 여정이란 면에서 셀프 동기부여도 중요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150일에 가까워진 아이의 변화를 기록하려고 한다. 출산일을 기준으로 그간 얼마나 성장했는지, 즉 구체적으로 어떤 걸 할 수 있게 됐는지를 하나씩 찾아봤다.
작년 초 임신을 생각지도 않았던 때 아내는 산부인과에 갔다가 임신 가능성에 대해 들었다. 이후, 아내는 임신은 아닐 거란 생각에 혼자 산부인과에 다시 갔다. 그때 아내는 초음파를 본 의사로부터 아기집이 둘이라며 쌍둥이일 수도 있다는 얘길 들었다. 임신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쌍둥이 가능성을 들은 셈이다. 복잡해했다! 아기집은 나중에 하나가 됐다.
그래선지 임신 자체를 수용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같이 산부인과에 간 건 7~8주 차쯤이었다. 동네에 큰 여성병원이 있었으나 작은 산부인과부터 찾았다. 그때까지 현실감이 없었던 나는 산부인과에 갔지만 아내의 임신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임신 초기, 더디게 흐르던 시간은 중기를 지나며 꽤 빠르게 갔다. 중-후기 몸이 무거워지기 전에 여행을 가면 좋을 거란 조언을 듣고 제주도에 다녀왔다. 둥둥이 시절, 아이는 아내 뱃속에서 움직임이 꽤 컸다.
임신기간 10개월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아내의 임신으로 우리는 어떻게 출산, 육아를 감당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을 챙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부분 부질없었다. 전혀 소용이 없다고는 할 순 없지만, 대개 때가 되면 할 수 있는 그런 일이었다. 꼭 미리 할 일이라면 산후조리원 예약 정도! 일찍 예약하면 할인받을 수 있다. 이를 제외하면, 주위 출산을 앞둔 부부가 있다면 둘 만의 시간을 즐기라고 하고 싶다. 또 여유가 있다면 임신기 무료로 갈 수 있는 궁, 미술관, 박물관 등을 찾아 열심히 다니라고 하고 싶다.
임신 초기 4주, 중-후기 2주, 말기 1주마다 잡히는 병원 일정을 쫓아가다 보면 금방 출산일이다. 임신 말기에는 시간이 더 빠르게 갔다. 주치의는 36주부터 뱃속 아이가 성장을 멈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뱃속 아이가 작으면, 작게 낳아 밖에서 키우는 경우가 많다며 우릴 안심시켰다. 37주에도 성장세가 더디면 예정일 전에 꺼내야 한다고 했다. 출산방법을 정하지 못하고 있던 우리에겐 일종의 정해진 답을 따르도록 한 상황 변화였다. 당시 주치의도 자연분만, 제왕절개는 선택의 문제로 전문가 사이에도 의견이 나뉜다고 했다.
주변 지인들의 출산 사례는 많아야 두 자릿수를 넘기는 정도고, 거의 매일 아이를 받는 산부인과 전문의 소견이니 그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주치의는 산모 의사에 따라 출산 방법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 도돌이표, 제자리였다!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는 순간은 금방 다가왔다. 그러던 차, 뱃속 아이의 상태로 인해 제왕절개를 하게 됐다. 지금 돌아보면 뱃속 아이가 부모의 고민을 덜어준 셈이다.
처음 아이를 만날 날을 더듬어보면, 지금의 성장은 믿기지 않는다. 생후 150일에 가까워진 아이는 아침, 일정한 시간에 일어난다. 오전 7~8시쯤 일어나는 아이는 자리에서 잠이 덜 깬 얼굴로 소리 내 하품하거나 꼬물꼬물 몸을 움직인다. 아이가 일어나면 기저귀를 확인한다. 8시간 이상 통잠을 자기 때문에 기저귀는 바로 교체해야 한다. 이때 아이에게 "잘 잤어? 일어났구나!"하고 눈을 맞추면 아이는 미소 짓거나 기분 좋은 표정으로 기지개를 켜기도 한다.
말은 못 하지만, 이렇게 표정과 몸짓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점은 놀랍다. 잠에서 깬 아이는 일정 시간 활동을 원한다. 부모와 함께 있길 원하는 아이는 혼자두면 바로 운다! 어느 정도 놀이를 하며 에너지를 쓰면 아이는 배고픔을 호소한다. 몸을 배배 꼬며 손을 빨고 소리를 낸다. 부모를 찾는 소리와 배고픔을 호소하는 소리는 다르다. 묘사하기 어렵지만 그렇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아이가 활동을 원하는지, 배고픈지는 추측할 수 있다. 아이의 하루 루틴이 어느 정도 형성됐기 때문이다 (처음엔 울음소리를 분석해 이를 구분해 주는 휴대폰 앱을 썼다. 우리도 초보 부모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셈이다).
150일에 가까워진 아이는 눈빛, 손짓, 소리 등을 더 정교하게 통제한다. 자신이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든 부모를 찾는다. 지금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건 "바닥에 눕히면 반대로 몸을 뒤집는 것, 입에 문 쪽쪽이를 뱉거나 손으로 빼는 것, 손에 맞는 장난감을 주면 쥐고 흔드는 것, 젖병에 담긴 분유를 먹다 배가 부르면 혀로 젖병을 밀어내는 것,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몸과 눈을 돌리는 것, 눈으로 주변을 보다가 시선을 맞추는 것" 등이다. 생후 150일 만에 이런 걸 할 수 있게 된 점은 경이롭다.
물리적으로도 출생 직후, 2.65kg에 45cm에 불과했던 아이는 6.4kg에 67cm로 성장했다. 몸무게는 2배 이상, 키는 1.5배가 됐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아이 몸무게가 이제 7kg에 가까워져 안거나 들 때 꽤 묵직함을 느낀다. 오늘도 열심히 성장하고 있는 아이를 보면 감사하다는 생각뿐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우리 부부는 작은 아이를 주제로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부모로 당연히 할 일이지만, 아이 없이 살며 회사 일에 치여 살던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 고민이 완전히 달라졌고, 아이를 중심으로 생각하니 준거기간은 더 길어졌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기 바쁘지만,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먼 미래를 그리게 됐다. 우리 가족의 미래가 불확실한 건 상수지만, 그래도 현실 문제를 이겨내고 셋이 함께할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게 일상이다.
"매일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를 보면 '얼른 크면 뭐든 같이 할텐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편으론 지금 150일만 돌아봐도 그때그때 예뻤던 순간이 찰나로 지나가 아쉽기도 하다!" 앞으로는 아이의 작은 변화를 꼼꼼히 포착해 더 열심히 기록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아가야, 폭풍성장을 해서 시간이 많이 간 것 같았는데. 이제 150일이네. 앞으로 더 많은 날들을 엄마, 아빠랑 함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