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세 아니 출산 전부터 예약한다고요?
23년 1월 18일,
처음 접한 0세 사교육
아이 나들이로 들른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우리는 '대치동'이란 전시를 봤다. 전시는 과거 경기도 작은 농촌 마을이 어떻게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가 됐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강남 사교육은 상상보다 더 정교하게 짜인 시나리오에 의해 작동하는 듯했다. 그 전선이 얼마나 치열한지와 별개로, 여러 행위자는 단계별로 각자 다른 역할을 하며 그 생태계를 유지하는 걸로 보였다. 사교육을 거의 받지 않고 자란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였다.
이렇게 우연히 접한 전시로 우리 부부의 대화는 자연스레 교육으로 옮겨 갔다. 아내는 몇 주전 유아동 교육업체의 방문 판매 얘기를 했다. 한 서구 교육학자 이름을 딴 업체 영업사원은 출산 전, 또는 0세부터 발달단계별로 아이에게 노출시킬 교재, 교구 등을 예약해 구매하는 부모가 많다고 했다. 아니, 아직 옹알이만 할 뿐 제대로 기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맞춤형 교구'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상술임에 분명했지만 아내는 일단 들어봤다고 했다.
그는 아내가 걱정할만한 대목을 노련하게 꼬집었다고 했다. 아니 생각지 못한 걱정거리를 끌어안게 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했다. 그렇더라도 많은 이들이 큰돈을 들여 이른 시기부터 그런 걸 산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새빨간 거짓말로 들렸다! 아이 사교육을 0세 아니 출산 전부터 기획하다니, 믿기지 않는다. 아이가 건강한 것만으로 감사할 시기지만 발달에 맞는 교육을 신경 쓰지 않으면 아이가 뒤쳐질 거란 얘길 듣는 건 꽤 불편했다.
교묘해진 상술이 아니라도 제정신으로 부모 역할을 하는 건 만만치 않다. 모두에게 힘든 세상임에 틀림없지만, 이런 도발은 부모가 되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육아란 신세계에 접어들며 겪게 된 아이를 대상으로 한 도발적 제안, 아니 강요성 상술은 정말 현란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과연 이 터무니없는 상술에 넘어가는 이들이 있을까?,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볼모 삼길래 이런 일이 일어날까?"란 의문을 쉽게 가졌는데 말이다.
영업사원이 부른 교재 값이 비싸 교구에 혹한 아이 모습에도 아내는 중심을 잡았다고 했다. 아내는 평소와 달리 화려한 교구에 크게 호응하는 아이 모습에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고 했다.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나 그 광경을 본 다른 이들은 주머니를 열었을 법하다고도 했다. 출판업계에서 일하는 아내는 영유아 단계에 맞는 교재나 교구를 이렇게 파는 건 접한 적이 없다고 했다. 콘텐츠를 파는 업계에는 좋은 틈새임에 틀림없다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전했다.
사실 해당분야에 전문성이 없어 이에 대해 정확한 판단은 할 수 없다. 다만, 아직 걸음마도 못하고 말도 못 하는 아이에게 외국어 교재가 무슨 소용이 있을지에는 의문이 든다. 물론 언어 습득기 다수의 언어에 노출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유익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나 모국어 습득만으로 버거울 시기에 과연 외국어 노출이 얼마나 유의미할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언어습득 학계에서도 이른 시기 언어 노출에 대해 한 가지 합의된 결론이 있는 건 아니듯 했다.
육아를 하며 마주한 큰 어려움은 '애 바이 애', 어느 하나 보편 원칙이 없다는 거였다. 모든 부모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이에게 타고난 만큼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잠재력을 펼치도록 좋은 환경을 조성해 주고 싶은 마음뿐일 것이다! 말은 쉬운데 아이가 클수록 고려할 변수는 많다. 아이가 부모를 알아보고 자신의 의사를 표정으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생후 150일이다!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는 걸 '흔들리지 않는' 목표로 삼아야 하는 '현실' 부모의 처지가 안타깝다.
흔한 유아동 교재를 두고 이런 고민까지 하다니... 당장 답을 찾으려 하면 할수록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사는 데 답이 없듯 육아도 그렇다. 그간 우리가 삶에서 비교적 정답으로 여겨지는 선택을 고민 없이 한 탓도 있다. 또 내가 감당해야 할 것이라면 이렇게 깊이 고민하지 않을 법하다. “내 경솔한 선택으로 아이가 겪어도 되지 않을 어려움에 처하면 어떡하지?"란 질문은 무시할 수 없었다. 육아를 경험한 이들은 절감할 대목이다. 이 고민도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모호한 시간을 견디는 건, 어쩌면 육아에서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