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시루 Jan 20. 2023

모두에게 행복한 명절일까

모두가 명절을 잘 쇠는 방법은 없을까?

23년 1월 20일,

모두에게 행복한 명절일까


음력을 쇠는 문화권은 새해를 두 번 맞이한다. 올해 설도 바로 이번 주말로 다가왔다. 결혼 전후로 명절을 보는 내 시각은 달라졌다. 결혼 전에는 혼자 마음대로 고향을 찾아 편히 쉬었다.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뜻하는 결혼은 삶에 관습이 지우는 무게를 더한다. 비교적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처방에 맞춰 살아온 우리 부부는 결혼을 하고 가족 의례의 무게를 절감했다. 양가 부모님이 편의에 따라 방문 일정을 정하도록 배려했지만, 연휴 대부분을 고향길을 오가는 도로에서 소모해야 했다.


양가 부모님 거주지는 각각 서울 대방동, 전남 강진이다. 서울 내 이동은 부담스럽지 않지만, 내 고향집까지는 정말 먼 길이다. 명절 연휴에 이동하면 최소 6~7시간, 최대 10시간 이상을 차에 갇혀 있어야 한다. 결혼 전 한 번은 명절 교통정체에 맞물려 꼬박 13시간을 좁은 차 안에서 꼼짝 못 했던 적도 있다. 고향을 떠나 생활하며 20년 넘게 부모님 댁을 오갔지만 그때 기록은 역대급이다. 조금만 보태면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LA까지 갈 시간이다(13시간 30분)!


연휴가 보통 4~5일이라고 하면 이 경우 첫 이틀은 그냥 지워진다. 첫째 날은 이동으로 보낸 시간이 길어서, 둘째 날은 장기 이동에 따른 피로로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는 다시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내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우리 둘은 부모님께 감사한 것과 별개로, 고작 명절 당일을 함께 보내고자 무리한 이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전부 계획대로 되지 않았으나 각자 부모님께 우리 생각을 전할 둘이 이에 공감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결혼 6년 차니 그간 총 10번 이상 명절을 거쳤다. 돌아보면 결혼 첫해, 다음 해는 여행으로 명절 때 해외에 있었다. 대신 설, 추석 전후 주말을 이용해 부모님 댁을 찾았다(첫해땐 추석에 고향을 방문했다). 서울은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었으나, 강진을 하루에 오가는 건 어떻게 봐도 무리였다. 그간 처가댁은 들러서 식사를 하고 잠시 머물다 왔는데, 내 고향집은 보통 2박 3일로 다녀왔다. 다행히 집안 행사는 없어 번거로운 일이 적었다 해도 아내에게는 큰 부담이었음에 틀림없다.


셋째 해에는 설, 추석 가운데 한 번만 명절 당일을 포함한 일정에 긴 휴가를 내고 부모님 댁을 방문했다. 명절 고속도로 혼잡도를 참고해 비교적 교통량이 적은 날을 택해 이동했다. 그렇게 해도 편도로 6시간 내외를 도로에서 보냈다. 4~6년 차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귀성길에 오르지 않았다! 현재도 우리는 열심히 대안을 찾고 있다. 중간 지점에서 만나거나 명절 연휴를 비껴 방문하는 등의 방법말이다. 우리의 대안이 언제 현실이 될지는 부모님 뜻에 달려 있다. 부모님이 수용하면 쉬운 일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마음을 돌려세우기 위해 소모적 시간을 써야 한다.


아이가 생기고, 또 아이와의 이동이 가능해지며 맞은 첫 명절이라 든 다른 생각도 있다. 아이도 전통 명절에 대한 '어떤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시대가 바뀌고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달라졌다 해도 내가 겪은 명절에 대한 기억 중 일부라도 아이가 경험해야 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1인 가구가 40% 이상으로 늘었고, 전통 가족 개념이 약해졌다 해도 명절 때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낸 건 좋은 기억이어서다. 물론 부모님 친척들을 차례로 만난 그때를 떠올리면 엄마가 고생이 많았던 건 확실하다.


모든 면에서 가족 중심으로 변하는 상황을 보면 명절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바로 윗세대 부모가 보냈을 명절을 생각하면 그들이 기대하는 뭔가는 분명 있을  같아 우려는 된다.  양가 부모님이 아이를 예뻐하는 모습을 보면  자주 봬야 하나 싶다가도, 이에 따른 피로도를 고려하면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모두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명절에 누군가 희생해야 하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과거  저항 없이 받아들였던 관성(inertia) 기준으로 명절 관습을 거부하는 젊은 층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잘못이다. 부모 세대 때는 '의례를 위해' 희생양이  엄마(여성)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누군가 희생해야 얻을  있는 즐거움은 원치 않고, 오히려 없애야  대상이다.


이 생각은 어느 날 망원 창비 카페에서 봤던 김유담 작가의 소설 '안'과 겹쳤다. 소설에는 전통 가족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는 여러 여성이 등장한다.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한 큰 엄마, 아빠 대신 힘겹게 가장역할을 한 엄마, 결혼 후 커리어를 포기하란 말을 듣는 '나'까지!’ 소설 속 화자는 윗세대 여성의 희생으로 수혜를 받았지만, 자신은 가부장제 속 여성 역할을 적극 거부한다. 소설 속 그의 선택은 통쾌한데 반해, 명절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내 고민은 소심하기만 하다!  


관성이 이렇게 무섭다. 몇 년이 아닌 몇 세대에 걸쳐 형성된 가족(의례) 관습을 극복하고, 모두가 즐거운 명절을 보낼 방법을 찾는 건 우리에게 큰 과제다. 좋은 게 좋은 거란 말로 포장해 일방적으로 관습을 강요하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부디 이번 명절에는 가부장적 전통으로 고통받는 여성이 줄고, 모두에게 즐거운 명절이 되길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처음 접한 0세 사교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