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슈퍼히어로!

딸에게 보내는 그림책 편지 <엄마가 너에 대해 책을 쓴다면>

by 시루

엄마의 그림책 편지

: 아이들이 홀로 설 때 주려고, 우리가 아직 함께 있을 때 열심히 씁니다.



물리치료실에 누워 있었다.

발목을 삐끗한 딸은 건너편에, 다쳤던 무릎이 시큰거리던 참인 나도 구석 자리에. 늘 우렁찬 남자 물리치료사가 무릎 흉터를 보고 한마디 하는 소리에 눈 감는 척 고요히 있다가 스륵 눈이 떠졌다.


"우와, 우리 ㅇㅇ이 별 잘 그린다. 예전엔 삼각형-삼각형으로 그렸었는데 멋진걸!"

부산 사투리로 이렇게 다정한 아빠 목소리라니.

"별이 반짝거려. 아빠, 별이 지구한테 와?"

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게 만드는 귀여운 목소리다. 아직 짧은 발음이 남아있는데 영민한 질문이라.. 이렇게 귀여운 발음의 남자아이라면 여섯 살쯤 되었으려나, 다정한 대화가 자꾸만 귀를 잡아끈다.


"아니야, 별은 아주 멀리멀리 있어서 반짝이게만 보이는 거야"

"그럼 로켓으로 갈 수 이떠?"

우리 집 - 우리 동네 - 우리나라 - 세계 - 지구 - 우주 - 은하계... 아이코 아버님, 어디까지 가시려나 싶은데 적당히 브레이크를 거셨다. 로켓으로는 아직 '달'까지 밖에 못 간다고.(흠 그러한가?ㅋㅋ)


"거기 공기 없떠"

"응 거긴 공기가 없어서 못 가지"

"아냐 헬로카봇 가떠. 달 안에 토끼 이떠."


아핫핫.

이과 매력 휘날리던 아버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며 작아진 건 느낌 탓일까. 어허 그랬어? 묻는 목소리에 아이도 함께 웃던 중 두 번째 치료를 시작하는 모양이다. 레이저다. 레이저 치료는 10분, 보호자도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 눈을 뜨면 안 된다 당부하고 나가는 아빠와 혼자 남은 아이.


그랬었지, 우리 딸도 처음 물리치료 받으러 왔을 때 잠깐 혼자 있어야 해서 무서워했었는데.. 홀로 오지랖 걱정이 앞서며 무릎 전기치료의 진동과 찌릿거리는 쪽으로 가려는 신경을 모아 옆 침대 동태를 살폈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 . ."

어머. 무섭구나,

휙 고개를 돌려보니 눈을 가리려 마스크를 올려 쓴 채 숫자를 세고 있다.

아이코.


"스물셋. 스물넷. 스물다섯. . . "

어쩌나. 이제 겨우 스물다섯을 헤아렸는데 더 이상 숫자를 몰라 멈춘 아이. 우리 사이의 커튼 두 장까지 파르르 떨게 만드는 당황과 두려움의 파동 ㅜㅜ


순간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켰다.

유튜브로 얼른 '헬로 카봇'을 검색하니 오프닝 곡 무한 연속 시리즈들이 뜨네, 가장 먼저 뜬 노래를 실행시켰다. 잠시 침묵하다 숫자를 1부터 다시 세기 시작한 아이 쪽으로 휴대폰을 슬쩍 내밀어 올렸다.


못 들었나?

볼륨을 잠시 키우자 숫자가 멈췄다.

아 이제 노래를 알아챈 아이, 안심하고 볼륨을 살짝 줄이고 휴대폰을 들어 올린 팔을 가만히 지탱해 본다. 아이야 무서움을 잠깐 잊으렴, 갑자기 이게 무슨 노래지? 깜짝 놀라면서 몇 분, 좋아하는 헬로 카봇 노래에 안심하며 몇 분.


드디어 레이저 치료 종료 알림에 함께 안심했다. 얼마나 긴 어둠이었을까 이 작은 아이에겐. 얼른 마스크 내리고 눈을 뜨길, 어둠 속에서 난데없이 들려왔던 누군가의 노랫소리를 기억해 주길.




딸!

엄마가 이러느라 네가 치료 끝났다고 수십 통 보낸 카톡을 못 봤어 미안해. 팔을 움직이면 옆 침대까지 노랫소리가 안 갈 것 같았거든.


꼬꼬마와의 무언의 연대를 들려주니, 엄마가 슈퍼히어로 보다 더 멋진 일을 했다고 말해줘서 감동받았어. 우와- 그런 얘길 들으니 엄마 완전 '마음만은 히어로' 기분이었지 뭐야. 핫핫. 사춘기 예민러를 걱정했더니 요즘 마음을 드러내는 말을 (갑자기?)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해주기도 하는 우리 딸. 다 너희 덕분에 알게 된 마음인걸.


우리 딸들 넘어질까, 무서울까, 걱정하며 살피던 마음이 점점 번져서 주변의 다른 아이들에게도 시선이 닿게 된 거지. 생각도 못 했던 돌발 행동을 하게 되고, 예전엔 짐작도 못한 경험도 불쑥해보게 만드는 건 너희가 아닐까.


집에 와서 <엄마가 너에 대해 책을 쓴다면> 그림책을 찾아 책장을 뒤지며, 네가 '엄마에 대해 책을 쓴다면' 슈퍼 히어로라고 쓴다며 그림을 그려준 우리 딸. 고마워- 가보로 간직하마.(앗 그럼 너희 둘이 물려받는 건가?)


ⓒ시루서재, 첫째의 그림


영광이야,

엄마야 말로! 너에 대해 책을 쓴다면 페이지가 넘쳐나지!


엄마가 너에 대해 책을 쓴다면
네가 얼마나 놀라운 아이인지를
세상 어디에든 쓸 거야.

<엄마가 너에 대해 책을 쓴다면>


<엄마가 너에 대해 책을 쓴다면>




우리 딸은,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아이라고.

그 사랑을 주위에 퍼뜨릴, 마음이 큰 아이라고.


또 너는,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데 선수라고.

주변의 무쓸모를 모아 너만의 기막힌 쓸모를 발견해 내는 아이라고.

이렇게 하나씩 너에 대한 스토리를 발견하는 게 나의 기쁨이라고.^^


오늘 고마웠어,

너도 나의 슈퍼히어로!


나의 티가든b 행성♡


# 2022.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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