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만 고르기엔 너무 좋은 이야기들
그림책 글 작가 수업 마지막 날이었다.
“오늘이 마지막 합평이 되겠네요. 어느 분이 먼저 읽어주시겠어요?”
줌(Zoom) 화면 속 여덟 명의 수강생들 사이로 정적이 흐르고, 마이크 꺼짐 상태로 멋쩍은 미소만 오갔다. 몇 주간 반복했지만, 내가 쓴 이야기를 직접 읽어 공개하는 일에 익숙해지기란 쉽지 않으니까.
“제가 먼저 할게요!”
평소와 달리 용기가 생겼다기보다, 긴장감을 안도감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뿐이다. 하지만 충동적으로 손을 들고 마이크를 켜면서 직감했다. 낭패다! 마이크와 함께 심장 박동에 가속 페달이 함께 눌려버렸다.
공들여 쓴 그림책 원고를 읽는 내내 떨리는 목소리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처음 해보는 발표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이람. 작가님과 수업 동기들의 평가에도 비교적 열린 자세로 듣고 있다 자부했던 마음이 거짓이었다는 듯, 식은땀으로 뒷목이 갑갑해졌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호흡을 조절하며 천천히 마무리했다.
다음 차례 이야기들을 들으며 생각해 보니, 갑작스럽게 발표를 시작한 탓도 있겠지만 ‘잘 끝내고 싶다.’는 부담이 컸던 듯하다. 그림책 스토리보드, 원고를 쓰고 합평하는 동안 몇 번 반복해 들었던 지적 사항을 고치고, 기존과 다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고심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인 만큼 작가님의 평도 괜찮았고 응원도 받았지만, 이날 극도의 긴장 속에 원고를 발표하면서 오히려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계속해서 지적받은 점이 바로 내 시선이자 취향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아주 작은 존재들, 큰 이야기에 가려진 조용한 이야기들. 즉, ‘주인공이 아닌 것’을 쓴다는 점이 문제였는데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인정하게 된 순간이었다.
흥미로운 서사와 재미를 도맡을 힘 있는 캐릭터도 중요하지만, 작고 느린 것을 들여다보길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나인 것이다. 그러니 이제 약점이 아니라 강점에 내 시선을 두면 된다. 뜻밖의 발견 덕분에 몇 주 동안 작가님의 의도에 맞추려 애쓰면서 위축되었던 마음을 모두 버리고, 감사히 수업을 끝낼 수 있었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이토록 긴장했던 이 느낌을 언제 느껴봤더라. 필라테스에 한창 열심이었던 때가 떠오른다. 허리 디스크 치료 후 근력을 키우기 위해 1:1 개인 레슨을 꽤 오랫동안 받았다.
“꼬리뼈가 닿도록 지긋이 누르시고요. 자, 갈비뼈를 가득 채우실게요.”
“고개를 가볍게 내리시고요. 자, 척추 마디를 하나씩 천천히 돌돌 말아보세요.”
아직 가동 범위가 넓지 않고 자세가 한정적이었기에 선생님이 직접 짚어주시는 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단련하니 유산소 운동을 병행할 만큼 근력이 좋아졌고, 집에서도 혼자 연습할 만큼 열의가 생겼다.
그러다 하루는 보강을 신청한 탓에 다른 그룹에 섞여 수업을 받게 되었다. 개인 레슨으로 다져진 자세가 나름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내게 굴욕을 안겨 준 수업.
혼자 수업할 때는 텅 비었던 바닥에 매트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완벽한 레깅스 핏을 자랑하는 분들이 고수의 향기를 풍기며 우르르 등장했다.(그동안 나는 늘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익숙하게 자리 잡으면서도 서로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분들 틈에서 움찔하며 당장 다음 시간으로 미루고 나가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혔다. 나를 발견한 선생님이 앞쪽 매트로 부르며 웃어주었지만, 낯선 공기에 휩싸여 이미 온몸에 경고등이 윙윙거리며 켜진 내 몸을 어쩔 수는 없었다.
그날의 수업이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겠다. 늘 똑같이 시작하는 준비 자세부터 문제였다. 내 움직임에 자신감을 모두 상실한 채 자꾸만 거울로 시선이 갔다. ‘이 정도면 되었나?’ ‘각도가 이게 맞았던가?’ 옆 사람을 힐끔거리고 강사님을 찾느라 자꾸만 한 박자 더딘 몸짓이 되었다. 이리저리 몸을 틀어대느라 그날 밤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혼자 하는 운동과 혼자 쓰는 글.
내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면 안으로 감추고 파고드는 성향의 나에게, 이 두 가지가 비슷하게 다가왔던 것일까. 잊지 못할 경험으로 그 후로 아직도 그룹 운동은 시도를 못 하고 있지만, 글은 달라졌다.
혼자 쓰는 일기와 다름없던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이 되었다. 그뿐인가, 스스로 합평 수업과 모임을 찾기 시작했다. 자꾸만 거울로 내 몸짓을 살피던 날처럼 여전히 가끔은 긴장되는 날도 있지만, 혼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귀한 발견을 하게 된다는 걸 배웠으니 자꾸 빠져든다. 내게 익숙한 시선이 누군가에겐 낯설고 어색할 수 있는 부분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래’였던 혼잣말이 ‘너도 그래?’ 물음표를 건네기 위해 한번 더 내 진짜 속내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더 나은 자세를 상상하고 그 자세가 나오고 있는지 읽고 또 읽는 내 글의 열혈 독자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변화에 유연해진 것일까. 작은 도전들을 계속하게 되는 요즘이다. 누군가는 ‘딱 한 가지(One Thing)’를 정해 매진하라고 충고하지만, 다양한 시선으로 쓰는 법을 배웠듯이 나는 아직 다양한 쓰기를 하고 싶다.
물론, 코어(Core)를 단단히 붙들고 쓰는 힘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아직 한 가지에 가두고 싶지 않은 걸 어찌하리. 산책하다 만난 한 장면에 그림책 한 페이지가 떠오르고, 그 위로 이야기가 흘러 동화가 되기도 하고, 내 마음을 파고들어 에세이가 되기도 한다. 아직 여물지 못한 내 시선과 마음들이 그렇게 흘러나온다. 아직은 이 갈래들을 붙들어 조금씩 발을 내딛는 중이다. 짝을 정해야 하는 사랑도 아니고, 글쓰기에서라도 내가 애정하고 바라는 이야기 갈래들을 만나보아도 좋겠지.
써보지 않던 근육을 쓰면서 느끼는 낯섦과 미세한 통증이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하니까. 지금은 여러 방향으로 자세를 잡으면서, 이제 막 힘이 붙기 시작한 글 근육들이 굳지 않도록 유연하게 흘러가려 한다. 목적지는 정하지 못했지만, 이 다양한 움직임들이 계속 쓸 에너지가 될 테니까. 코어에 힘을 딱! 주고, 리듬을 찾아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