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는 걸음

사랑으로, 삶의 심지를 세운다

빛을 향해 한껏 기울여 스미는, 사랑

by 시루

“엄마, 진짜 왜 그래?”

가방을 벗어던지며 다짜고짜 묻는 아이.


“텔레파시 받았어요? 자꾸 이렇게 잘해주면 엄마가 너무너무 좋아지잖아!”

배드민턴에 푹 빠져있는 둘째다. 하굣길 통화 중에 ‘나가서 배드민턴 칠까?’ 물었더니, 도착하자마자 입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산들거리는 맑은 창밖을 보다가 녀석이 절로 떠올랐던 것인데, 지난 주말 강풍으로 속상해하던 얼굴이 벌써 활짝 펴졌다. 서둘러 배드민턴 라켓을 챙겨 드는 아이를 보니 물어보길 잘했다며, 내 입꼬리도 한껏 올라갈 수밖에.


단지 내 한적한 공간을 차지하고 한참을 뛰어다녔다. 자꾸만 엉뚱하게 날아가는 셔틀콕을 향해 바람 탓, 자리 탓을 하면서도 열 번의 랠리가 이어질 때까지 쳐 보자며 팔을 뻗었다. 역시나 먼저 지친 내가 주춤하자, 떨어진 셔틀콕을 주우러 뛰어다니는 것은 대개 아이 몫이었다. 열 번을 주고받으려면 해가 지겠구나 싶을 즈음, 캐치볼 하려는 아이들이 모여들어서 자리를 비켜준다는 핑계로 그날의 경기를 마무리했다.

나는 이미 기진맥진한 얼굴이 되었는지, 둘째가 저 혼자 편의점에 다녀올 테니 기다리라며 내달렸다. 나무 그늘에 앉아 초록이 부푼 틈으로 드는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으니 저만치서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 ‘아니, 또 뛰어오는 거야?’ 길 끝자락에서부터 열심히 손 흔드는 아이를 향해 천천히 오라는 손짓을 보내다 그만두었다.


“엄마, 광합성이 뭐예요?”

아직 한창 귀여운 입매로 내게 물었던 날, 꼬꼬마 둘째의 표정이 겹쳤다.


“광합성? 바로 이런 거지!”

설거지하던 두 팔을 벌리고 하늘로 쭉 펼치며 알려주었던가. 창가 초록이들이 해를 향해 바깥으로 기울어 있는 이유라며, 햇빛을 받아서 초록초록 본연의 색을 만들어 내는 걸 설명했었다. 잘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동글동글 눈을 반짝이던 작은 아이가, 지금 저기 있다.


팔을 활짝 벌리고,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를 향하는 모습이 마치 광합성하는 식물의 줄기 같았다. 빛을 향해 돌진하는 초록 알갱이들처럼 내 품에 뛰어들어 열기를 넘겨주는 작은 몸. 그 순간 와르르 쏟아져 내게 스며든 그것을, ‘사랑’이라 정의했던 날의 장면이다.


그날 이후, 내 안의 사랑은 어쩌면 아이들 품에서 자라고 있는 게 아닐까 종종 생각했다. 거침없이 나아가기 전에 주저하고, 아이들을 향한 사랑조차 과해지면 독이 될까 재단하는 나이기에. 적정선을 고민하는 엄마를 아랑곳 않고 작은 팔로 나를 휘감아 오는 아이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서로의 품에 있는 빛이 온기가 되어 섞이도록 우린 서로 ‘광’ 합성 작용을 해 주고 있는 거겠지? 두 팔을 쭉 뻗고 자양분인 해를 탐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반사라는 듯 거칠 것 없이 ‘사랑’만을 품고 나를 부른다.

그러니 내가 동화나 그림책 이야기를 짓고 싶은 마음을 먹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환한 빛을 향해 쭈-욱 몸을 늘여 한껏 기울인 모습을 보며, 나 또한 환한 마음을 기울여 밖으로 흘려보냈다. 내 아이들이 넘어질까, 무서울까 걱정하며 살피던 마음이 점점 번져서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도 시선을 건네고 싶어진 것이다. 아이들이 채워준 품을, 조금씩 꺼내어 글을 쓴다. 혼자였다면 알지 못했을 마음들을 발견하고 요긴하게 쓰고 나면 이상하게도 다시 그득하게 채워져서 신기한 날도 있다. 어쩌면 사랑은 쓸수록 자라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내게 주었던 만큼만이라도 되돌려 줄 수 있길 욕심내 볼까. 힘껏 발을 굴러 그네를 올리듯 모험을 만끽하는 아이들. 불안하지 않게 주변을 감싸주는 응원은 역시 햇살일 테니, 나부터 먹구름을 껴안은 채 동동거리지 말고 온기를 키워야 할 일이다.

사랑으로, 삶의 심지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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