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일(수) 코스 5: 남원 - 쇠소깍 올레
제주도 다시 내려왔다. 내려오기 전에 종로5가 등산용품 전문점에 들러 블랙다이아몬드 디스턴스 FLZ Z폴드 스틱과 무릎보호대를 구입했다. 오래 걷는데다 오르고 내리는 길이 많다보니 무릎에 무리가 가는게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Z폴드 스틱 구입은 대박이다. 긴 거리를 걷고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해도 무릎에 가는 부담이 훨씬 줄었다. 그런데 무릎보호대를 완전 실패다. 작으면 너무 당겨 피부에 발진이 생기고 너무 느슨하면 슬슬 흘러내린다. 따라서 무릎보호대를 사지마라. 무릎 통증이 심한 분이라면 옷밖에서 찍찍이로 붙이는 보호대를 사는게 어떨까 싶다.
그 다음 가장 중요하다는 하는 등산화를 사러 강남 테크니카 직영점까지 내려갔다. 나는 발볼이 넓고 발등이 높은 탓에 신발을 넉넉하게 신어야 한다. 그런데 젊은 여성 점원이 자꾸 발에 딱 맞는 사이즈를 강권하는 터라 참지 못하고 ‘발에 신발을 맞춰야지 왜 자꾸 신발에 발을 맞추려고 하냐'라고 핀잔을 주고 넉넉한 사이즈를 샀다. 옛날에 롯데백화점 점원이 이탈리아 산 수제구두라며 발에 맞지 않는 명품을 권하길래 조금 불편해도 샀다가 두번 신고 다시 신지 않은 적이 있었다. 게다가 한참동안 발도 아팠다.
열성형은 특이했다. 신발 밑창을 열을 가해 부드럽게 만든 뒤 신발 모양 튜브에 발을 넣고 튜브에 바람을 넣었다. 5분여간 발바닥 모양에 맞게 밑창을 굳혔다. 그 다음 등산화에 열을 가해 부드럽게 한 뒤 같은 튜브에 발을 넣고 바람으로 신발을 발에 밀착시킨 뒤 식혔다. 이걸 열성형이라고 한다. 등산화를 열에 가열해 부드럽게 한 뒤 발 모양에 딱 맞게 성형한다는 뜻일게다. 이 열성화 등산화는 엄청난 성능을 발휘했다. 발목 피로는 눈에 띄게 줄었고 같은 거리를 걸어도 발바닥에 전해지는 자극은 덜했다.
등산화와 장비를 갖추고 내려오자마자 숙소를 짐을 푼 뒤 바로 나왔다. 코스 5를 돌기 위해서다. 남원포구에서 쇠소깍다리까지 총 13.4km를 걷는 코스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라는 큰엉 경승지 산책길을 지난다는 다소 과장된 소개와 달리 다른 해안 산책로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새 제주 해안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가. 엉은 바닷가나 절벽에 뚫린 바위그늘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기암절벽을 따라 뚫린 곳을 두리번거리며 찾았으나 유감스레 큰엉을 발견하지 못했다. 혹시 벤치가 하나 있고 그 위에 바다 가지와 잎들이 무성한 곳이었나.
코스5에서 인상적인 곳은 위미동백나무군락이었다. 제주도 시집 온 처녀가 동백나무 씨를 심고 평생 가꿨다고 한다. 초겨울에 저리 빨간 꽃을 피우는 나무 군락을 보고 있자니 계절 감각을 잃어버렸다. 동백나무 군락지 앞에 자리한 식당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소주 한병도 시켰다. 동백꽃에 취한 건지 소주에 취한 건지 남은 코스 내내 잔잔한 행복감에 취해 걸었다. 목적지에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난다는 쇠소깍이 도착했다. 풍경이 그럴싸하다고 하는데 역시 어두워진 탓에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어차피 6코스를 돌려면 이곳에 다시 와야하는 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