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파울루 둘째날 이비라푸에라서 웃통 벗고 운동한 뒤 구도심 워킹투어
3월17일 새벽 3시 30분 깼다. 어제 9시 30분쯤 누웠으니 대충 여섯 시간은 잤다. 노트북을 들고 식당으로 내려왔다. 한참 여행기를 작성하고 있으니 호텔 이페의 주인장 나카지마 카즈하가 아침식사를 준비하려고 나왔다. 상파울루에서 태어나 브라질 여인과 결혼해 살아온 터라 일본어보다 포르투갈어가 능숙했다. 극동 아시아에 뿌리를 둔 두 동양인이 상파울루에서 만나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를 섞어 대화를 시도하는 꼴이라니 ㅋㅋ
카즈하가 준비한 아침식사를 환상적이었다. 커피는 풍미 가득했고 열대 과일은 달고 신선하고 바케트 빵 위에 토마토를 올려 구운 빵은 일미였다. 접시를 들고 음식을 담고 게걸스럽게 먹는 내 모습을 보더니 카즈하가 조용히 옆으로 다가와 “계란 먹을래?”라고 물었다. 눈을 크게 뜨고 “응"하고 답하자 카즈하는 스크램블을 만들어 수줍게 갖다 놓았다. 다른 투숙객 상 위에는 없는 계란 스크램블이 내 밥상 위에 올려졌다. 이렇게 소심하지만 배려심 많은 카즈하와 친구가 되었다.
조식을 마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한 시간가량 자고 나자 체력이 회복되는 걸 느끼고 이비라푸에라 공원으로 갔다. 상파울루 시내에 자리한 가장 큰 공원으로 한 바퀴 돌면 10km나 된다고 한다. 공원에 들어섰더니 남자 대다수는 웃통을 벗고 자외선 만땅의 햇살을 받으며 뛰거나 걸었다. 여자 다수는 브라탑 또는 비키니 입고 산책 코스를 뛰거나 잔디에서 축구를 즐겼다. 축구의 나라답게 예사 실력이 아니었다. 날아오는 공을 가슴으로 트래핑해 발리슛을 갈기다니. 헐~
웃통 벗기가 국룰인 듯해 나도 벗었다. 연한 갈색으로 물들인 머리는 햇살을 받자 금발처럼 빛나고 그 머리를 묶어서 꽁지를 만들고 웃통을 벗고 있으니 브라질 현지인과 다를 바 없었다. 선글라스까지 꼈으니. ㅋㅋㅋ 공원을 두 바퀴나 돌고 철봉에서 턱걸이도 하고 한참 땀 내고 있는데 하승이 김치찌개 사진을 보내며 자기 집으로 밥 먹으러 오라는 톡을 보내왔다. 어제 새벽 3시까지 25세 여인과 광란의 밤을 보낸 뒤라 김치찌개로 속을 풀려고 만들었는데 내 생각이 났나 보다. 우버를 타고 하승 집으로 갔다. 하승이 끓인 김치찌개를 환상적이었다. 대학 재학 시절 일본 소바 식당에서 일한 솜씨가 나왔다. 하승은 참 다채로운 삶을 살아온 친구다.
김치찌개에 밥 말아 두 그릇을 해치운 뒤 하승을 따라 세상에서 두 번째로 비싼 커피를 마시러 구도심으로 향했다. 상파울루 금융 중심지 복판에 자리한 일 바리스타(Il Barista) 커피숍에서 자꾸 새 커피를 주문했다. 남미에 서식하는 자꾸 새가 커피 원두를 먹고 배설하면 다시 원두를 회수해 커피를 만드는 것으로 루왁 커피 다음으로 비싸다고 한다. 점심식사도 거하게 얻어먹은 터라 자꾸 커피는 내가 샀다. 자꾸 커피는 부드러우면서도 쏘는 맛이 강하고 뒷맛이 개운하면서도 커피 입에 담았다가 목 넘김하고 나면 은은한 향이 입 안에 남았다. 비싼 이유가 있었다.
커피 향이 가시기도 전에 하승은 다시 어제처럼 장정에 들어갔다. 구도심 곳곳을 돌면서 워킹 투어를 시작했다. 상파울루 구도심은 파울리스타 거리보다 훨씬 고풍스러우면서도 깊었다. 오랜 역사가 담긴 건물은 세월의 더깨를 입고 전통의 미를 뽐내고 있었다. 곳곳에 홈리스 족과 부랑자들이 자리하고 있어 해 넘어가면 절대로 오면 안 되는 곳이라고 한다. 낮에도 휴대전화를 내놓고 다니면 위험한 곳이다.
하승의 가이드를 따라 식민지 시절 지어진 건물부터 100년 넘게 세워진 고층 빌딩까지 찾아다녔다. 그중 상벤투 성당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노숙자 집단거주 지다시피 한 쎄 성당은 멀리서 보고 지나쳐 아쉬웠는데 그 아쉬움을 상벤투 성당이 가시게 했다. 브라질 성당 예술은 스페인 성당보다 화려하다. 오랜 세월이 내뿜는 작품의 깊이야 스페인 성당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상파울루 성당 안에 새겨진 작품에는 간절한 신앙심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 담겨 있었다.
이비라푸에라 공원부터 걸었으니 오늘도 어제 못지않게 걸었다. 우버 타고 한참 나온 구도심에서 리베르다지 거리를 관통해 숙소까지 걸었다.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 미란다 커가 리베르다지 거리에서 마시면서 유명해진 아사히 주스를 마셨다. 묘한 맛이다. 망고와 파파야, 그리고 바나나를 섞어 놓은 듯한 맛을 내는 적갈색 주스인데 건강에 좋은 슈퍼푸드라고 한다. 하승은 몸에 좋은 슈퍼푸드를 즐겨 먹고 마신다. 그런데 입에서 담배를 떼지 않는다. 슈퍼푸드니 먹으면 몸에 좋다며 밥에 좁쌀처럼 생긴 브라질 곡류도 넣고 아사히 주스를 즐겨 마시면서 입에는 늘 전자담배가 물려 있다. ㅋㅋㅋ 담배 끊으면 웬만한 슈퍼푸드 먹는 것보다 몸에 훨씬 나을 텐데. 뭐 성인인데 취향이란 게 있으니깐.
마트에서 저녁 찬거리를 사서 숙소로 들어왔다. 저녁식사로 이번에는 된장찌개를 만들겠단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낮에는 김치찌개, 저녁에는 된장찌개를 먹는 한국인 관광객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싶다. 브라질 독주 까샤샤 한병도 샀다. 까샤샤 원액에 라임을 짓이겨 뽑은 라임액을 넣어 만든 까샤샤 칵테일을 음미하고 된장찌개를 안주삼아 먹었다. 밥 먹고 나니 다시 방전됐다. 하승은 오후 7시 온라인 수업을 해야 했다.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씻지도 못하고 침대 위에 널브러졌다. 2시간가량 자고 일어나니 하승에게 톡이 와있었다. 불금에는 숙소에 있는 게 아니라며 상파울루의 마지막 밤을 불태우자고 멋진 바의 사진들을 보내왔다. 하승의 체력은 불가사의하다. 어제도 새벽 3시까지 달리고 오늘 낮에 하루종일 돌아다니고 저녁에 강의까지 하고서 다시 밤에 나가자고 한다. 나도 하루 3시간씩 수영, 웨이트, 스텝업을 빠지지 않고 해온 터라 체력이라면 결코 뒤지지 않는데 하승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상파울루 밤 문화를 경험하지 싶었지만 눈을 딱 감고 그냥 숙소에 남았다. 오늘 밤에 나갔다가는 내일 꼼짝도 못 하고 숙소에서 누워있어야 할 것이다.
내일은 상파울루에서 90km 떨어진 해변에 놀러 가기로 했다. 상파울루에서 사는 한국인 여성분이 하승에게 해변에 가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자기도 친구 한 명 데리고 나올 테니 나도 데리고 가자고 말했단다. 남미사랑 브라질 단톡방에서 어리바리한 질문을 올리는 내가 궁금했나 보다. 참, 그 여성분도 단톡방에 있다. 상파울루 해변에서 바라보는 대서양이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