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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May 07. 2023

해발 5000m 버금가는 삶의 넘사벽을 마주하다

5월5일(금) 남미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69 보러 와라즈에 오다

비행편으로 쿠스코를 떠나 리마로 이동했다. 리마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10시간가량 달려 와라즈라는 마을로 갔다. 당초 와카치나라는 오아시스 마을에 가려 했으나 마음을 바꿔 69호수와 파론 호수를 볼 수 있는 고지대로 온 것이다. 리마에서 나가는 싼 항공편을 찾다가 12일 새벽 1시 멕시코 칸쿤행 비행기표를 찾았다. 일주일 간 리마에서 보내고 싶지는 않고 와카치나는 2박3일이면 충분한 도시라서 와라즈에서 69호수를 보고 와카치나로 이동해 사막에 떨어지는 해를 보고 남미에서 빠져나가기로 했다. 4600m 넘는 고산지대를 단숨에 올라야 하는 힘든 코스라 내게는 벅찬 도전이지만 이것이 고산에서 벌이는 마지막 트레킹이라 마음먹고 도전하기로 했다. 다행히 4500m까지 차로 올라 그곳에서 능선을 타고 69호수까지 가는 스페셜 코스가 있어 당초 우려보다 어렵지 않게 페루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를 볼 수 있게 됐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와라즈 시내 전경

결과적으로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예상치 않은 암초를 만났다. 함께 가는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실패했다. 남미에 와서 가장 어울리기 힘든 상대들을 만났다. 나름 열심히 노력했지만 젊은 남녀 둘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있는 모양새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불편했다. 나중에 함께 어울리는 게 힘들어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렸다. 둘도 나와 함께 있는 게 불편해 보였다. 여행하면서 내가 괴팍하게 변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 내가 유난히 어울리기 힘든 성격의 소지자들을 만난 건지 모르겠다. 우유니에서 소금사막을 누비던 성욱, 선경, 은주, 순혁, 희진 같은 동행과 파타고니아 여행 시 격의 없이 어울렸던 소담, 나래, 윤성 같은 친구가 너무 그립다. 

와라즈에서는 눈을 위로 돌리면 어디에서든 설산을 볼 수 있다

내일 파론 호수에 오른다. 아침 8시 클래식 코스에 올라 파론 호수를 본다. 하이라이트는 모레 오르는 4500m 능선길 따라 69호수까지 가는 코스다. 사진으로만 봐도 가슴이 벅찬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69호수를 보면 남미에서 내가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은 다 보는 거다. 과테말라 활화산 아카테낭고를 보지 못하는 게 유일한 아쉬움이다. 이곳은 5000m 넘는 고산지대를 1박2일간 가야 하는 곳이다. 4000m를 넘으면 고산병 증세가 심각하게 찾아오는 내게는 넘사벽의 지역이다. 나중에 고산병을 이겨낼 수 있는 체질로 개선할 수 있다면 도전하기로 미룬다. 

와라즈 전망대에 있는 대형 십자가

이번 여행에서 내가 넘어야 할 넘사벽이 있음을 확인했다. 나이가 먹을수록 나이차 나는 이들과 소통의 벽을 넘어가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자연의 섭리이겠지만 내 마음이 늙어가는 걸 확인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는 않다. 어쩌겠냐. 넘기를 시도하다 보면 비니쿤카나 살칸타이처럼 죽을 고생하면서 넘기도 하고 아카테낭고처럼 엄두가 나지 않으면 피해 가는 게 삶 아니겠는가. 철현이가 철이 들어가는구나. 결국 이리 늙는구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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