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명절은 사람을 들뜨게 한다

부자는 소 잡고 아이들은 사탕 달라고 이웃집 초인종

by 이철현

카파도키아 북부 관광지를 도는 패키지 투어를 마치고 우치사르에 있는 한인 민박집에 5시쯤 돌아왔다. 집에 아무도 없어 샤워하고 빨래나 하며 지내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여니 초등학교 저학년쯤으로 보이는 어린이 3명이 터키어로 뭐라고 했다. 나는 집에 아무도 없다고 영어로 말했다. 어린이 3명은 신기하게 나를 쳐다보며 싱긋이 웃고만 서 있었다. 이 집안 아들 진아(5세)의 친구라기에는 너무 큰데다 모르는 이들을 주인 없는 집에 들일 수 없어 문을 닫았다. 10분 뒤 돌아온 주인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사탕 얻으러 온거란다. 터키 명절 바이람에는 사탕 달라며 이웃집을 돈다고 한다. 참고로 민박집 아주머니는 터키인과 결혼해 10년 이상 카파도키아에서 살고 있다.

IMG_5123.JPG 새벽 4시30분 서둘러 일어나 탄 열기구. 카파도키아 관광의 하이라이트라할만하다.

배가 고파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우치사르 중심가의 터키 식당에 가는 중 기이한 장면을 봤다. 소가 통째로 해부돼서 트럭 뒤에 실려 있는데 한 가족 구성원들이 나와 칼로 여기저기 부위를 잘라 가지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터키에서 살만한 사람들은 바이람 기간에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잡는다고 한다. 카파도키아 북부 부자동네 우치사르에서는 바이람 기간 소를 통째로 잡는 집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한참 서서 지켜보다 길을 다시 걷는데 차에 찬 할아버지가 지나가는 낯선 이방인인 내게 터키어로 말을 걸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 못 알아듣겠다고 몸짓하니깐 웃으면서 지나갔다. 그러다 다시 5분 뒤 이번에 청년들이 탄 차가 지나면서 뭐라고 말을 건다. 눈치를 보니 먼길 갈거면 타라는 거다. 낯선 이방인이 어디를 갈 때 기꺼이 자기 차에 태워 동승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게다. 바이람 기간에는 관광서나 기업체들이 문을 닫는다. 8월21일부터 일주일 기간 소 잡아먹고 사탕 얻으러 다니며 마을이 들떠 있다.

IMG_5177.JPG 비와 바람이 조각한 버섯바위들이 독특한 비경을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나는 관광객답게 어제 오늘 양일간 카파도키아 전역을 돌았다. 어제는 그린투어를 신청해 남부 카파도키아 북부 관광지를 돌았다. 화산이 분출하면서 덮은 평원에 비와 눈, 그리고 바람이 깎아내 기기묘묘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영화 스타워스에 나옴직한 외계 행성과 비슷하다. 자연이 조각한 돌기둥, 산, 계곡 곳곳에 인간들이 파고 들어가 인공 동굴을 만들어 살았다. 동굴이나 암벽 속 집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항상 15~17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밖은 뙤약볕에 기온이 상당히 높았지만 암벽을 파고 들어간 지은 집이나 교회 안에는 시원했다.

기원전 15세기 히타이트시대부터 동굴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그 뒤 로마, 비잔틴, 셀주크투르크,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거치면서 동굴 집들은 갈수록 커져갔다. 특히 그리스도교인들이 로마와 오스만투르크 시절 종교 박해를 피해 카파도키아 전역에 암벽집이나 지하도시를 만들고 먹고 자고 기도하는 곳을 마련했다. 카이막클리 지하도시에는 한번에 3천 명가량이 살았다고 하니 시설이 엄청나다. 지하 8층까지 파고들어갔다고 하니 신앙심이 인간을 얼마나 강하게 또는 집요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IMG_5162.JPG 화산은 여러가지 색깔의 암석을 만든다. 이곳은 핑크색을 띄워 로즈벨리가 불린다.

오늘은 카파도키아 북부를 도는 레드투어에 합류했다. 북부에는 괴르메, 우치사르, 우르귑 등 카파도키아 주요 도시들이 몰려 있다. 이에 동굴을 파고 들어가 만든 케이브(동굴) 호텔이나 레스토랑들이 버섯처럼 생긴 암석이나 동굴 집 사이에 박혀 있다. 특히 우치사르에서 괴뢰메 방향을 바라보는 언덕에는 멋진 동굴 호텔이나 집들이 밀집해 있는데 멋지다. 우치사르성 위에 올라 카파도키아 전역을 돌아보니 그 비경에 감탄이 나왔다. 우치사르성이라고 하지만 이것도 작은 산만한 암석덩어리를 뚫고 파서 거대한 주거지역으로 만든 곳이다.


카파도키아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벌룬(풍선) 타기였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 20명과 함께 벌룬을 타고 카파도키아 하늘 위로 올라갔다. 고도를 높이자 벌룬은 바람에 밀려 15km를 날아갔다. 그 중에 고도를 높이거나 낮추면서 계곡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기도 하고 지상 650m에서 산과 계곡을 조망하며 감탄했다. 화산에 덮인 평원을 비와 바람이 오랜기간 파고들어가 만든 계곡은 우글쭈글하게 기괴한 비경을 만들어냈다.

IMG_5159.JPG 카파도키아인들은 암석을 파고 들어가 동굴 집을 짓고 산다.

새벽부터 돌아다녔으니 오후 5시 레드투어를 마치자 지쳐서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씻고 일찍 누웠는데 오후 7시 카타르에 사는 터키인 가족 25명이 쳐들어왔다. 아이들만 15명이니 거의 난장판이었다. 내 방 문도 벌컥 열고 들어오는 녀석들도 있었다. 최대한 무서운 표정으로 문 열지 말라고 해도 씽긋 웃고 나간다. 이거야 원. 뭔 말을 알아들어야 뭐라고 하지. 잠을 포기하고 투어 중에 산 카파도키아 특유의 투르산 포도주를 따서 한잔하고 밀린 여행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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