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이 안부
한창 일하고 있는데,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휴대폰 화면에 조카 이름이 떴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하면서 전화를 받았더니, 대뜸 “노랑이 어떻게 되었어요?” 한다.
“뭐라고?”
“궁금해서요. 노랑이 어떻게 되었는지…….”
“너는 뙤약볕에서 일하는 고모 걱정은 안 되고, 노랑이?”
“브런치에서 고모가 노랑이에 대해 쓴 글을 읽는데, 걱정되어서요.”
“응, 아직 살아있다. 고모가 마트에서 1350원 하는 캔맥주를 아낀 대신 노랑이에게 하나에 1500원 하는 건강식을 10개나 사다 줬거든. 그걸 먹어서 그런지 쌩쌩해졌다.”
“헤헤. 다행이네요.”
조카는 친구에게서 얻은 고양이에 길에서 주워온 길냥이를 추가하여 두 마리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서, 내가 브런치에 노랑이에 관해 쓴 글을 읽고 노랑이가 걱정되었나 보았다. 한때 의지할 곳이라고는 고모 셋밖에 없던 조카가 마음을 두었던 대상이 조카가 키우는 두 마리 고양이였다. 그 고양이들 때문에 살아낼 수 있었다고 했다. 외롭고 서럽고 무서웠던 밤에 벗이 되었던 고양이 두 마리, 내가 부치는 생활비 일부가 고양이 두 마리 사료로 쓰인다는 사실에, 제 밥값도 없는 처지에 철없다 생각하다가도, 그 마음을 알기에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었다.
지난번에 목이 부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때, 전화를 걸어온 조카가 내 목소리를 듣고 울먹이며, “고모, 죽지 마세요. 고모가 죽으면 나는 힘들 때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요?” 했다. 그때도 내가 “너는 고모 죽는 것보다 전화 걸 사람이 없는 것이 더 걱정이구나.” 하며 핀잔을 주었다. 당황한 조카가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하길래, “그래. 니 마음 내가 왜 모르겠니?” 하였더니, 잠시 말이 끊겼다. 아마도 울음을 참느라 그랬을 것이다.
고양이 안부만 묻고 전화를 끊기가 좀 걸렸는지, “고모, 고모가 작년에 주신 고춧가루 엄청 맛있어요.” 했다.
“준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그동안 엄청 바빴잖아요.”
하기는 그렇지. 코로나 시국에 최일선에서 일하느라 고생이 많았지.
“저 그 고춧가루로 쪽파김치 담았어요. 색깔도 엄청 이쁘고 맛도 끝내줘요.”
“쪽파김치도 할 줄 알아.”
“배워서 했어요.”
“하기는 요즘은 유튜브가 선생이고, 인터넷이 친정엄마라니까. 배울 마음만 있으면 찾아보면 나오니.”
“맞아요.”
“올해도 우리 조카 고춧가루 챙겨줘야 하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다. 탄저병이 돌고 있어서. 그나저나 너 노랑이 소식이 궁금해서 전화했으니까, 잠깐 기다려. 지금 노랑이 내 발밑에 와서 계속 치근덕거리고 있거든. 동영상 찍어서 보내주마.”
내가 멈추어 서서 통화하고 있으니까, 노랑이가 다가와 배를 뒤집으며 뒹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노랑이 행동을 1분 정도 동영상으로 찍어서 카톡으로 조카에게 보내주었다. 그 동영상에는 노랑이 발과 신발을 신고 있는 내 발이 하이파이브하는 장면도 있었다.
잠시 후 조카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와, 완전, 웃겨요. 와, 완전 대박! 고모, 이제 보니, 고모가 노랑이에게 간택을 당했네요. 그렇게 배를 뒤집어 보이며 애교를 부리는 것은, 나는 당신이 엄청 좋아요, 하는 뜻이라니까요.”
“간택을 당한 것인지는 모르겠고, 그 애교 덕분에 사료값은 엄청 나가고 있다.”
나는 과장해서 말했다.
“헤헤, 그래도 귀엽잖아요.”
“귀엽다기 보다는 안타깝지. 늙은 고양이거든. 그래서 이렇게 뒹굴며 애교떠는 것도 안쓰러워. 지깐에는 얻어먹는 값을 하느라 그런 것 같아서.”
“그것도 있지만, 고모를 엄청 좋아해서 그런 거예요.”
“내가 노랑이가 이렇게 뒹굴 때마다 한마디 한다. ‘너 그러다 허리 다치면 병원에 안 데려간다. 의료보험이 안 되거든’ 하고.”
“헤헤헤.”
“너네 고양이들도 잘 있지?”
나는 조카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들 안부를 처음으로 물어보았다. 조카가 힘든 환경을 이겨내고 자립을 하는 데에 고모 셋이 보태준 생활비가 도움을 준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고양이 두 마리 역시 조카가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기까지 그 힘든 고난의 시기에 곁에서 온기를 전하며 응원해주었음을 안다.
조카가 노랑이 안부를 묻는 이유도 한때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 걱정하며, 공부하랴 아르바이트하랴, 동동거리던 그때가 생각나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