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의 노예, 무한한 반복

by 시선siseon

뭔가 그런 날이 있다. 욱의 빈도가 더 높을 때. 아니, 더 정확히는 욱하는 감정이 올라올 때 그 정도가 평소에 5 이면, 브레이크 없이 바로 10으로 치솟을 때. 사소한 일에 감정이 치솟는데 그 감정의 뒤틀림이 무척 강하게 온다. 오장육부가 다 뒤틀리는 느낌. 그러니 잘 진정될 리 없고, 그래서 주변과 가장 사소한 트러블을 많이 일으키는 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평소에 전혀 화가 나지 않던 일에 말도 안 되게 화가 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강도가 세게 올뿐. 그러다가 갑자기 - 틀림없이 - 그것이 온다. 그날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순간, 언제나 이런 생각이 든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한 달에 한 번. 매달 겪는 일인데도 도통 학습이 되지 않는다. 분명 이런 증상에는 '생리 전 증후군'이라는 병명도 붙어있을 만큼 일반적이고, 주기적인 일인데 왜 학습이 안되는지, 대응을 할 수가 없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마음먹고 인지해보기로 한다. 무엇을? 바로 이 '호르몬의 작용'을 말이다. 주기가 꽤 일정한 편이기 때문에 주기를 알려주는 어플을 설치한다. 그리고 인지한다. 아 이제 이틀 전이구나.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생리 전 증후군이 오는 날이라는 것이 '모든 것'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아, 나 오늘은 생리 전이라 그래. 그래서 무기력도 하고 화도 나는 거야. 이렇게 피곤한 것도, 일이 안 풀리는 것도 당연해. 다 호르몬 때문이야. 그런데 짜잔! 막상 예정된 그날에 시작되지 않는다. 아.. 아니었어. 그냥 그건 평소의 하루였는데 온통 '그래도 되는 하루'를 만들어 버렸다. 그 혼란. 늘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왜 그런지'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출 수 없는 내 뇌의 메커니즘이 극심한 혼란을 겪는다. 그날의 나를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기분. 그럼.. 그날은 뭐였지?


몇 번 이런 일을 겪다 보니 주기를 알려주는 어플 따위, 지워버렸다. 그래서 또 매달 겪는다. 그날이 시작되면 여지없이 아, 그래서 그랬구나를 읊조리는 일을 멍청약 주워 먹은 마냥 매달 반복하는 것이다. 시작 전 이틀 정도가 이렇게 호르몬의 마수에 농락당하는 기분이라면, 그 이후는 그냥 물리적으로 시달린다. 허리가 아프고, 쉽게 지치고, 그래서 일의 텐션이 도저히 오르지 않는다. 치르렁 늘어지는 그 텐션은 또 그 기간만 그런 건 아니다. 무려 '배란일'은 따로 있지 않은가? 배란통과 함께 오는 늘어지는 텐션, 시작하기 전 이틀, 그리고 그 기간. 그 모든 나날들을 합하면 맞다. 누군가는 6일밖에 안된다 했다는데 그 정도는 아니라도 이놈의 호르몬의 영향을 안 받는 짱짱한 컨디션!은 한 달에 며칠이나 될까 싶은 건 사실이다.


누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이렇게 매달 시달리는 것도 지긋지긋할 일인데 막상 나이가 들어 끝나면! 그건 또 그대로 폐경기 증후군을 불러온다 하지 않던가. 이건 뭐, 끝이 없다. 해도 지랄. 안 해도 지랄. 무한히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호르몬의 노예 짓도 즐길 수 있어지는 걸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흑흑. 즐기기는 개뿔. 그냥 받아들이는 거지 뭐. 그래도 이번 달에는 나의 하루치 글감이 되었으니 그나마 한번 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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