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찌꺼기

by 시선siseon

1. 강박


뭐라도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죽을 것 같은 컨디션의 몸을 이끌고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막상 생각한 글감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저 써야지만이 살 수 있다는 이 절박함은.. 뭘까. 나와 한 약속인 365일 글쓰기가 이끄는 긍정적인 동기라면 가장 정상적인 이유와 현상일 테지만, 오히려 일상을 글쓰기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일종의 강박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 지 문득 겁이 난다. 강박은 결국 스트레스를 동반하니까. 글쓰기가 나에게 주는 그 모든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강박이 주는 스트레스가 이를 덮쳐 무력화시키지는 않기를.


2. 체력


Sound body, Sound mind. 진리다. 평소와 달리 왜인지 모르게 너무나 강렬하게 온 몸을 덮쳐온 생리통에 허덕여 빠져나가질 못하고 있다. 퉁퉁 부은 얼굴과 축 처지는 몸상태. 꼼짝을 할 수 없어서 하루 종일 집에만 갇혀있다시피 했다. 집에 있다고 해서 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갈 수 조차 없었다는 것은 내 기준에서 정말 특별한 상황. 내일이면, 좀 낫겠지. 기대를 걸어본다. 호르몬이여, 이제 그만 나를 놓아주오.


3. 무심


수많은 장점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가도 그의 무심을 맞닥뜨리는 순간, 또 기가 차고 코가 찬다. 언제부터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차곡차곡 쌓인 빨래. 냉장고를 가득 채운 술과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배달음식의 흔적. 관리되지 않은 식재료들은 썩어나가고 문 입구에는 그대로 방치된 택배들. 간신히 뜯었다 한들 물건이 제대로 온 것인지 아닌지 단 일의 확인도 없기에 그 모든 것을 정리하고 관리하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다. 오랜만에 나의 공간에 오면 이 무심들을 걷어내는데 온 체력과 마음을 한바탕 소진하는 것이 수순이다. 그러고 나서야 다시 쉼이 가능 한, 내가 알던 나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체력이 될 때면 몰라도 이렇게 몸이 힘든 날엔 이 모든 것이 그저 버겁기만 하다. 적당히 내려놓고 그냥 손대지 말아 보자 하다가도 어느새 죽을 것 같은 몸을 이끌고 하나하나 정리.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내 몫은 늘 이 정도면 되니까. 나머지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감사하며 다시 그저 묵묵히 마무리를 해본다.


4. 업무


별 것 아니라면 아닌, 한 시간 정도 짜리의 업무인데 미처 처리하지 못하고 남겨둔 채 왔다. 한 문단 쓰기. 그래도 짜깁기가 아닌 창작이라 부담이 된다. 그러니 더더욱이나 빨리 끝낼수록 총스트레스는 줄어들겠지. 뻔한 셈법임에도 어찌 이리 늘 시작은 힘들까. 이 모든 체력과 정신의 한계, 차오름이 조금만 진정되면.. 얼른 하자. 빨리 하는 길이 살길이다.


5. 망각


하나를 생각하고 처리하다가 다른 것이 떠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떠오른 것을 먼저 한다. 꼭 우선순위가 높아서가 아니라 그저 중간에 떠오른 것이 하던 일을 마칠 때쯤이면 또다시 잊힐까 봐 빨리 해치워버리겠다는 것이 원래 의도다. 그런데 하다 보면 종종 그래서, 첫 번째 일로 돌아가는 것을 잊는 참상이 빚어진다. 에휴. 이 정도 일의 순서를 기억하는 것에 벌써 뇌가 힘겨워하지 않기를. 좀 더, 차분해 지기를.


6. 일상의 찌꺼기


그 전에도 글 쓰기 전에 글감을 정했던 것이 아닌데, 하나의 주제로 완결된 글을 쓰던 것과 이렇게 모든 일상의 단상들을 기록하는 형태로 글을 쓰는 것은 그저 관성의 차이인 듯하다.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일상들을 실타래 풀듯 푸는 일상의 정리, 일기의 기능의 글쓰기와 글을 쓰면서 사유할지언정 하나의 주제에 대한 생각을 풀어나가는 에세이 형식의 글쓰기가 차츰 균형 잡혀 가기를. 물론 지금은 좀.. 차오른 일상의 찌꺼기를 배출하는 것이 급선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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