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가 없는 날, 글쓰기

by 시선siseon


나와의 수다




오늘은 적절한 글감 찾기에 실패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양한 단상들을 메모해 봤지만 이렇다 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 마음이 너무 어지러운 탓일까. 역시 글을 쓴다는 것은 참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소재가 있으면 즉흥적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나의 글쓰기 스타일이 만들어낸 부작용 인 듯도 하다. 그렇기에 소재가 없으면 한 자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니까.




그래서 오늘은 소재가 없음으로 글을 쓴다. 소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글쓰기밖에 기댈 곳이 없다. 마음이 어지럽고,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다. 가장 쉬운 선택은 타인과의 연결. 마음이 통하는 지인과 통화하든 완전히 새로운 사람과 통화하든, 대화를 통해 분위기를 전환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 전화기를 들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항시 쓸 수는 없다는 단점이 있다. 대화할 상대방을 찾지 못할 수 있고, 타인 의존적이기 때문에 통화하는 상대의 상태에 따라 때로는 더욱 큰 마음의 스트레스를 쌓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책을 읽는 것. 책을 읽음으로써 주위를 환기한다. 책이 이끄는 세상으로 시선을 잠시 돌려 숨 쉴 틈을 찾는다. 성공하면 스스로 무언가를 얻으면서 마음도 정리하는 일석이조를 해냈다는 자부심으로 마음이 뿌듯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시행하기까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타인이 전달하는 정보와 세상을 내 머릿속에 담을 만큼의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글쓰기다. 글을 써내는 과정이 마치 마음속의 복잡한 실타래를 끌어내어 다시 예쁘게 정리하는 듯한 기분에서 오는 안정감. 이것이 장점이지만 이 또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책을 읽을 여력조차 없는 지금은, 그리고 마땅히 통화할 사람조차 찾지 못한 지금 글쓰기는 나의 어지러운 멘탈을 정리하는 최후의 보루다.



그래서 소재가 없어도 쓴다. 소재가 없다는 것은 사실 오늘 하루, 단 한순간도 제대로 된 '사유' 혹은 '사색'을 한 적이 없다는 말과 같다. 일상을 그저 지나가는 시간으로 흘려보낸 것일까. 그 모든 시간들 속에 주목했던 '한 순간'이 없었던 것이다. 사유하지 않은 하루가 마음이 어지러운 하루로 이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가.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글감을 달리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글은 늘 '나'에 머물러 있다. 자아를 다이어트하고자 했지만 여전히 내 시선은 '나'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로지 스스로의 감정 상태에 집중해 있다. 그러나 자아, 혹은 영혼이 빈약한 내가 이렇게 나의 이야기만 하다 보면 결국 뻔한 이야기, 반복되는 이야기만 할게 될까 봐 경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앞으로 매일 글을 쓴다고 생각해보면 우선은 바닥날 때까지 실컷, 마음껏 내 이야기만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정말 동어반복을 하게 되는지 일단 지겹도록 써보는 거다. 혹시 또 아나. 그러고 나면 새로운 시작이 가능해질 지도.


글감이 없다지만 키보드 앞의 나는 여전히 수다스럽고, 그 점이 그래도 내심 마음에 든다. 그래. 앞으로는 이렇게 키보드 앞에서 홀로 수다스러운 것으로 하자. 이것 또한 나와의 대화인데, 나를 내가 다독여주는 이 기분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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