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페루 악사 11화

민달팽이 간다

#2023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외 추가작-4

by 박찬희

(자이나교의 수행자들을 위하여,,,)


맨살로 기어가는 형극의 길

그러나

벗은 몸 내놓고도 당당히

디감바라*를 걷는 묵묵한 수도승

한 치를 나가도 이력은 쓸어내며 간다**


살아있음의 흔적 곧 지워질 것이어도

지금 민달팽이 간다 집도 절도 내려놓고 그저

길이 없는 길, 맨몸뚱이로 기어서가는

저 숭엄한 노정

뙤약볕 아래의 마하비라***


가는지 멈췄는지 촌각이 희미할 때

나신(裸身)의 가부좌에 묵직하게 실리는

수행의 무게

고스란히 견디어낸 제모(除毛)의 통(痛)

그 인고(忍苦)의 이면


거기, 계율마저 빗자루로 지우며 가는

묵언행(黙言行)의 이유가 있다



* 디감바라 - 인도 자이나교 나체수행자들의 활동근거지

** 자이나교의 수행자들은 미생물의 살생이라도 피하려 빗자루로 앞을 쓸며 걷는다

*** 마하비라 - 자이나교의 창시자로서 본명은 바르다마나, 기원전 540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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