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7
삐에로는 고깔모자를 쓴 채 자전거 페달을 연신 밟았다
무대 위에서 공전하는 외발자전거
바퀴살에 바짓단이 걸려 넘어지면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실수를 고의로 가장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삐에로이므로 박수를 쳤다
텅 빈 객석에 나뒹구는 조악한 플라스틱 의자들
하나씩 일으켜 세우며
삶이란 다 이런 거지 뭐, 하면서 하루를 지우고
벌점 하나 추가받은 날, 깎인 일당만큼의 소주를 들이키면서
삶도 그렇게 돌고 도는 거라고 한다고
단역 김씨의 유일한 대사를 훔쳐와 모노로그를 시연한다
삐에로는 있다가 없다
유랑서커스가 사양길에 들어선 지 오래 되었어도
삐에로는 날짜를 세지 못 한다
홀로 남겨진 날에 낡은 천막을 치고 걷기 시작한 후부터
이름 석 자 대신 삐에로라 불렸다
삐에로는 삐에로일 뿐, 대필된 계약서에 이름이 없다
무대 끝이 낭떠러지처럼 보일 때
내쳐 달리면 하늘의 끝자락에 닿을 수 있을까
그저 아무도 없는 곳에서라면
엎어져도 조각난 달빛 짚고 일어설 수 있으련만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닿을 수 없는 곳
거기 사람들은 입장권을 사고, 팝콘을 사고
삐에로는 팔린 노예처럼 남의 임금을 번다
송도 가는 길목, 황량한 나대지에서 펄럭이는
철지난 천막 속에서
달린다 밤낮없이 달려도 그 자리인 주행
공전하는 삐에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