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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희 Oct 06. 2023

갑자기 아무도 없는 날

#2023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6

캄캄해지기 직전에는 새들이 막 웁니다

우는 시간이 전깃줄에 걸려 대롱거리고

우듬지에 걸린 하루가 바둥대다가 미로 속으로 미끄러지면

가만히 서 있으려 해도 몸이 왼쪽으로 기웁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흐르던 모든 것들이 멈춰 서서

나를 재우려합니다

잠이 들면 지는 것이라고 종일 눈을 뜨고 지냈는데

밤이 되어도 눈이 감기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있는지 없는지를 모릅니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들 하지요

나는 그런 말을 좋아해서 모르고 사는 재미를 느끼곤 합니다


너무 번화한 곳을 프리즘으로 보면 늘 사각형입니다

모퉁이를 돌다가 베일 것 같아서 조심조심 걸어도 

사각의 틀에 욱여넣어진 사람들이 사각으로 쏟아져 나오는 아침이면

하루를 반으로 잘라도 그대로 사각형입니다 

사람들은 종일 그 모서리를 걷습니다


갑자기 아무도 없는 날이면 불안해질까요

아니오 저는 불안하지 않습니다

사실 혼자라 해도 새들처럼 울지는 않습니다

슬픔은 아무도 없는 날을 가리는 커튼입니다

아침이면 커튼을 걷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갛게 지운 어제를 복원하면  

갑자기, 내가 모르던 내가 미로 속에서 걸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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