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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희 Oct 06. 2023

의자가 온다

#2023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4

의자가 슬프다,라고 말하면 

가장 슬픈 의자,라는 정의도 가능하다 


창문 너머 나무의자 몇몇이 재잘거리고 있는 

폐교, 교정 단상 옆에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들

교장 선생님은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 싶다


네 다리로 버틴 수십 년의 시간은 이미 

종례도 안했는데 교문 밖으로 빠져나갔고

남은 의자들, 오와 열이 흩어진 채 서성거리고 있다


어디고 눈에 띄는 무언가 있듯

다리 하나 부러진 의자, 구석에서 벌을 서고

시간이 덧칠해 놓은 한 시절에 깁스를 한

한 남자가 깨금발로 서서 안쪽을 들여다본다

어떤 의자의 이름은 지금쯤 머리카락 허옇게 셌을 테고

어떤 이름은 종례도 안했는데 벌써 삶의 밖으로 나갔다

네 다리 온전한 의자들은 어쨌든 제 시간을 삭이고 있어도

다리 부러진 의자는 기운 몸조차 바로세우지 못하고 있다


슬픔이란 말이 

시에서는 상투적이라 젖혀두기 십상이지만

아무러면 어떠냐 어쨌든 의자는 슬픔이다

사실 삼각형이 가장 안정적 구도라는데

다리 꺾인 의자는 세 다리여서 더 슬프니 

값싼 감정의 과잉이라 해도 

시선이 가는 것마저 과잉이라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의자를 보는 일은 때로 슬픔을 보는 일이다,라고 우기며

남자가 창을 닦는다

아무리 닦아도 뿌옇기만 한 유리창을 여과지로 삼아 

시선을 보낸다

의자들이 오와 열을 맞추느라 부산스러운 오후

다리 부러진 의자가 저만치서 걸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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