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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Oct 30. 2020

수세미

수세미

                                                                                                                                                              최정미


 비닐봉지 안에 쓰지 않은 수세미가 한가득이다. 나의 싱크대 한쪽 서랍 구석 비닐봉지 안에는 노랑, 빨강, 초록 알록달록한 실로 뜬 알록달록한 수세미가 한가득인 채 있다. 수세미는 부엌이 있는 집이라면 흔한 물건이다. 설거지를 위한 도구로서 일을 마치면 싱크대 어딘가에 물기를 빼기 위해 걸려 있다가 더러워지고 냄새가 나면 버려진다. 

 친정아버지가 김치를 가져다주러 오셨던 날, 그 비닐봉지는 함께 건네 졌다. 뭔가 하고 열어보니 시장에 흔히 파는 수세미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뭐 이리 많이 사 오셨나 물었더니 엄마가 가져다주라 했다고 하셨다. 그 수세미 한 봉지는 무심히 싱크대 맨 밑 서랍에 그대로 들어갔다. 

 그즈음의 나는 친정엄마와 남동생과의 차별로 냉전 중이었고 그래서 엄마가 건네주라던 수세미는 함께 냉대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서로 연락은 끊겼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엄마의 수세미는 건네 졌던 참이었다.

 찬바람 불던 2월의 냉전은 따뜻한 봄이 와도 녹지 않았다. 벚꽃이 하늘거리던 봄날에 친정 근처 공원 벚꽃 길을 우연히 걷게 되었다. 눈송이같이 떨어진 벚꽃을 쓰다듬으니 보드랍고 고왔다. 엄마 생각이 나서 엄마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그뿐, 더  다가갈 수가 없었다. 나는 엄마와 거리 두기를 하는 중이었다. 가엷은 수세미들은 봉지에 든 그대로 서랍 속에 갇혔다. 그리고 나는 서랍을 열기가 두려웠다.

몇 개월에 걸친 소리 없는 냉전이 엄마의 밥 먹자는 문자로 어이없게 끝난 5월, 엄마가 차려 준 밥을 오랜만에 먹고 내가 나서서 설거지를 했다. 비닐봉지 안에서 본 듯한 알록달록한 수세미로 열심히 거품을 내어 그릇을 닦고 헹구고 있었다. 그리고 반찬을 정리하던 엄마한테 전에 건네 졌던 그 수세미들이 엄마가 퇴근 후 드라마를 보며 며칠에 걸쳐 하나씩 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 손은 멈칫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마에 맺힌 땀에 바람이 스치듯 지나갔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싱크대 맨 밑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그 검은 비닐봉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심장이 엉켜있는 듯 쿵쿵대며 요동쳤다. 다시 꺼내 본 수세미들은 화사하게 핀 꽃과 같았다. 검은 봉지 안은 온통 꽃밭이었다.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노랑, 빨강, 초록 실로 뜬 수세미들은 봄날에 피어난 꽃과도 같은 엄마의 마음이었다. 원망만 하느라 보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했던 꽃보다 고운 엄마의 딸을 향한 미안함과 사랑의 마음이었다. 

 딸자식이 모진 말을 뱉어도 엄마는 딸에게 준다고 시장에 가서 실을 사고 며칠에 걸쳐 꽃 모양의 수세미를 봉지 한 가득 뜨셨던 것이었다. 

 손재주가 좋으셨던 엄마는 예전 어린 딸에게는 빨강, 노랑 털실로 스웨터를 떠주시고 다시 풀러 목도리며 장갑도 예쁘게 떠 주셨다. 뜨개질하는 엄마 곁에서 나는 책도 읽고 치수를 재는 모델도 했었다. 이제 다 커서 미운 말 뱉은 딸에게 엄마는 그 예전처럼 수세미를 예쁘게 떠서 보내 주셨던 것이다. 

 투박하게 사랑하고 표현할 줄 모르는 엄마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엄마가 하나하나 뜬 수세미에 담았으리라. 나는 알량한 사랑을 엄마에게 주면서 가슴을 후비는 말들을 꺼내놓았고 엄마를 아프게 한 동시에 내 가슴까지 아프게 했다. 그 말들이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나 좀 사랑해달라는 투정과 다르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나는 아마도 검은 봉지 안 수세미들 중 단 하나도 꺼내어 쓸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무엇보다 내가 간절히 원했던 엄마의 사랑이 담긴 수세미를 차마 더럽힐 수가 없어서이다. 

 먼 훗날 엄마가 몹시도 그리워지면 그 고운 수세미들을 보며 엄마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차마 쓸 수가 없다. 철 모르던 어린 시절 엄마가 떠 준 털장갑 하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기에 더 그렇다. 

그래서 엄마의 봄날의 꽃 같은 마음이 배어있는 수세미를 비닐봉지 채 그대로 서랍 속에 놓아두고 싶다. 날 것 그대로의 기억이 나를 훗날 눈물짓게 할지도 모른다. 그럴지라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

 추운 겨울 자식들 따뜻한 옷 입히려고 뜨개바늘 쥐고 바삐 움직이던 엄마의 손 위로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처럼 주름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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