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병에 걸린 아들이랑 귀찮아 병에 걸린 엄마

제1화 피곤해

by 서로소

올해 중학생이 된 아들은 요즘 피곤해를 입에 달고 산다. 키가 20센티 크느라 피곤한가 싶어 홍삼도 먹여보았지만 피곤하단다.


김말이 좀 에어프라이어에 넣을까

싫어

기름종이 좀 예쁘게 넣을까

싫어

궁둥이 좀 맞을까

싫어 크크


싫다면서 하나씩 한다. 네 살처럼 일단 반항부터 해보는 것이다.

반항기 살짝 얹힌 그 모습 또한 귀여우니 도치 맘인 게다.

홍삼이니 비타민도 소용없는지, 늘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학교 다녀와서 뭘 좀 물어볼라치면 대답이 걸작이다.

오늘 ~한 건 어땠어? 이런 거부터 물어보려면 엄청난 눈치 작전이 필요하다. 오늘의 급식을 재빨리 살피고 점심 급식이었던 제육볶음은 맛있었는지 묻는다.

어, 괜찮았어.

오호.. 맛있었나 봐. 두 그릇 먹었어?

아니, 시간이 모자라서.

(시크한 놈..)


아들이 tv를 켠다. 만화 프로그램을 마구 검색한다. 쿵푸 팬더를 틀고는 멍 때리는 중이다. 휴식 중인 게다. 조금 쉬게 놔두는 게 상책이다. 하긴 나도 그맘때 왜 그렇게 피곤했던지 학교 다녀오면 곯아떨어져 저녁 먹을 시간까지 잤던 기억이 난다. 낮잠을 안 자다가 중1, 딱 그때 일 년 동안 잠이 쏟아졌는데 왜 그런지 모르고 그 시간을 지나왔다. 국민학교 통학 시에는 걸어 다니다가 중학교에 가면서부터 안 타던 버스를 타고 통학해서 피곤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아마 그때 나에게도 사춘기가 오면서 잠이 쏟아졌던가도 싶다.

아들에게 슬쩍 말을 붙인다. 두 어 개 물어보는데 대답은 단답형이다.

응. 아니면 괜찮았어. 오늘은 싫어. 가 없어서 다행이다.

만화를 보더니 재밌는지 배시시 웃는다.

'어쭈어쭈.. 천상 애 같잖아'

만화가 끝나고 내가 누워있는 소파로 오더니 안아달라며 옆에 눕는다.


좁다, 좁아 이놈아.


낄낄대더니 팔베개하고 눈을 감는다.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인 걸 알지만 나도 눈을 감는다.

학원이란 곳이 매일 갈 때마다 숙제가 부과된다. 도대체 끝이 없더라. 잔뜩 부과되는 과제를 보면 회사보다 지독하다 싶다. 그리스 신화 속의 시지프스 왕이 이랬을까 싶다. 이렇게 되면 퇴근인데 퇴근이 아닌 상태이다. 이런 일상이 반복된다면 웬만한 직장인은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아이들 하루 일과라는 게 오전에서 오후까지 이어지는 학교 수업, 늦은 오후 학원 수업, 귀가 후 숙제 그리고 취침. 직장인으로 치면 오전부터 회사에 출근하여 야근 근무하고도 못 마친 과제를 집으로 싸안고 와서 또 그걸 하다가 잠드는 그런 고달픈 일과되시겠다.

그래서 잠든 아이를 살포시 놔둔다. 아이 옆에서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털어내고 고개를 흔들어 잠을 쫓는다. 나는 저녁을 짓는다. 다 귀찮아도 아이를 먹이고 싶은 모성 하나는 살아있는가 보다. 저녁을 지으면서도 왠지 자는 아이가 고맙고도 미안하다. 맛있다며 먹을 아이 입을 상상하며 끓이고 볶는 일은 기계적인 가사노동 속에서도 한 줌의 깨알 같은 즐거움이 되어준다. 피곤해도 회사를 가는 남편과, 피곤해도 학교도 가고 학원도 가는 아들 그리고 피곤해도 가사와 육아를 하는 엄마가 오늘도 바위 같은 하루를 굴린다. 저 산 꼭대기까지.


내일 다시 긴 하루를 밀어 올려야 해도 우리는 오늘을 다시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혼자라면 귀찮고 힘들었을 테지만 함께라면,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