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병에 걸린 아들이랑 귀찮아 병에 걸린 엄마

12화 오늘도 웃음 feat.빠베르 까스뗄르씨.

by 서로소

간신히 잠에서 깬 아들은 어기적 거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원격 수업이 끝나고 나면 학교에서 따로 듣는 수업이 있어서 다녀오고, 그러고나면 한 시간 짬이 난다. 그 시간 밥을 먹고 채 다하지 못한 숙제를 하고나면 다시 학원을 간다.

오는 시간에 맞춰 밥을 미리 준비한다. 막 끓여 뜨끈한 감잣국을 호호 불며 밥을 말아먹으며 얘기하는 아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 꼬마와 비슷해 보인다.

"너, 애기 때랑 어쩜 이렇게 똑같니?

밥 먹을 때도 쫑알쫑알, 화장실에서도 쫑알쫑알.

너 애기 때 유명했잖아. 세 살인가 네 살 때, 화장실 옆 칸에 계신 아주머니가 너 응아 하면서 쉴 새 없이 쫑알거리는 소리 들으시더니 귀여울 거 같다며 얼굴 보고 싶다고 기다려서 보고 가셨잖아.

'네가 그 j구나. 너무 귀엽다. 말을 너무 재미나게 하길래 보고 싶었어' 그러시면서."


남편은 밥 먹을 때 똥 얘기한다면서 혀를 끌끌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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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너 과자 유튜브 만든다며? 코믹 버전이야, 클래식 버전이야? 진지하게 만듦 재미없어서 너네 안 보잖아. 그치? 핵노잼이면.. 구독 취소되고 막 댓글 달리고.

j:음..클래식하게?쎄.

나:너 클래식한 거 안보잖아. 재밌는 거 보잖아. 바나나 바나나 뭐 이런 송 보고..

j:그건 그렇지. 크크크


책상으로 간 아들 옆에 빨간 색연필이 뒹굴어 다니길래 무심코 색연필 통에 넣었다.


"악! 그거 거기꺼 아닌데."

"어? 그래?"

"다른 통 꺼야. 채점용이라."

"어떡하지? 꺼내야 되겠다. 빠베르 까스뗄르 나와라."


통을 흔들어도 안 나온다. 공간 없이 꽉 차 있어서 색연필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크 큰일 났다.


"빠베르 까스뗄르씨 빨간 색연필 돌려줘!

내놓으라구! 야, 빠베르 까스뗄르씨가 빨간 색연필 먹었어. 큰일 났어. 어떡해. 안 나와."


통을 계속 흔들었다. 아들은 빠베르 까스뗄르가 누구냐고 하며 색연필 통 이름이 프랑스 아저씨냐면서 깔깔대고 웃는다.


"여기 쓰여 있잖아. 빠베르 까스뗄르 라고."

"무슨 프랑스 아저씨가 빨간 색연필을 먹어? 크하하. 너무 웃겨."

"여기 쓰여 있잖아. Faber Castell 빠베르 까스텔르라고.

여하튼 이 빠베르씨가 네 색연필 먹었다. 뱉으라구!"


계속 흔드니까 유격이 생겨 빨간 색연필을 찾 꺼낼 수 있었다. 아들은 뭐가 되게 웃기는지 이제는 바닥에 뒹굴어가며 웃는다.


"엄마, 파버 카스텔 아냐? 왜 프랑스식으로 읽어? 크크크

무슨 프랑스 아저씨 이름이냐고.. 아.. 웃겨.."


"뒤에 쓰여 있는데 읽어봐.."

상표에 파.버. 카.스.텔.


헉, 나 여태 문구점 가면 빠베르 까스뗄 찾았는데... 그 직원들 어떻게 알아들은 거지? 날 이상한 아줌마 취급한 걸까... 두둥


"엄마가 더 웃겨. 유튜브는 엄마가 해. 크크크. 나 숙제해야되는데 계속 빠베르 까스뗄르밖에 생각 안 나. 크크크."


별것도 아닌 것으로도 깔깔대고 신나게 웃는 아들을 보니 나도 웃음이 나고 즐겁고 행복해졌다. 일상 속의 웃음과 재미가 비 오는 축축한 수요일을 밝게 바꾸어 주었다.

웃었으니 되었어. 우리의 하루..오늘 즐거웠지. 그냥 이게 좋았다.


삶이 너무 무거울 때는 새털보다도 가볍게, 가볍게 웃으며 지내는 것도 괜찮다.

웃음이 곧 포스트잇처럼 떨어져 날아가 버리더라도 그것은 의미 있다. 그 웃음이 우울을 털어내고 기분을 낫게 해 주고 삶이 의미 있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늘 진지할 필요는 없다. 축 늘어진 어깨와 힘들고 지친 표정, 생의 고단함을 배가 아프도록 웃어봄으로 우리는 리셋할 수 있다. 그저 어린아이들처럼 작은 것에 웃고 작은 것에 신기해하고 좋아하자. 때로는 작은 웃음이 그 어떤 위로보다도 큰 위로가 될 때가 있지 않던가.행복은 늘 우리 가까이에 있다. 아이는 부모에게 그것을 일깨워주려고 온 것은 아닐까. 빠베르 까스뗄르씨 당신 본명이 파버 카스텔인가 봅니다. 내게는 영원한 빠베르...그냥 빠베르 합시다. 프랑스에서는 그렇게 불릴 것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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