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인생게임이라는 보드게임이 있었다.
돌림판을 돌려 칸을 이동하면 입학을 했다며 축하금도 주고 자동차로 교통규칙을 위반했다며 벌금도 냈다.
인생에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많다.
아기가 뒤집기 하면 다음에 앉고 그 다음에 일어서고 걷는다. 걷고 나면 또 어떤 발달 단계들을 거쳐야히고 유치원을 졸업하고 나면 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 그 사이사이 계속 크고 작은 고민이 생기거나 일이 생긴다.
다치고 아프면 병원에 가고 교우 관계로 고민하고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또 생긴다. 취업을 하고 나면 결혼, 아이를 낳고 나면 육아, 회사일 크고 작은 집안 문제, 인간관계 갈등, 커가는 아이, 노쇠해 가는 부모, 사회에서 견뎌야 하는 경쟁과 질투...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해결해야 되는 수많은 과제들이 던져진다.
게임의 미션 완료 후 등장하는 다음 단계같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아이가 어릴 적 돌 지나면 편해지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유치원에 가면 나아지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한참 인생 선배인 분에게
"아이는 언제까지 키워야 해요? 대학 보내면 좀 편해지겠죠?"
허허 웃으실 뿐이었다.
"끝이 안 나는 것 같다. 끝이 어디 있겠냐."
하셨다.
나는 순간 전의를 상실할 뻔했다. 끝도 없는 게임판에 던져진 것 같았다. 결말 없는 이야기 속에 갇힌 것 같았다. 아니 최종 보스를 만나 싸워보기라도 하는 건지, 결말을 맞이하여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없다는 건가 싶었다.
살다가 시련을 겪을 때면 왜 내게, 열심히 살아온 내게 왜 이러는지 원망도 하며 울고불고해보았지만 결국 맞서 싸우고 해결해야 되는 것은 나일뿐이다. 수없는 왜(why)를 외쳐보아도 내 인생 게임의 말은 나다. 말은 죽지 않는 한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 삶의 스토리를 완성해 가는 것도 나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머리 싸매고 또 궁리하여 두 주먹 불끈 쥐고 정신 차리고 움직여야 한다.
실컷 울고 툭툭 털고 일어나고 왜(why)를 너무 곱씹지 말고 어떻게(how) 할 건가 선택하며 어느 방향이든 가다 보면 나무 그늘에서 쉴 수도 있고 가끔 보너스 스테이지도 만난다. 쉴 날도 있고 웃을 일도 있다.
그렇게 시련을 겪고 단단해지고 다시 위기가 오고 옹이 많은 인생이 되어간다.
누군가의 인생을 함부로 재단할 것도 없고 내 인생도 늘 힘들기만 한 것도 아닐 것이다.
인생게임에도 '쉬어가기' 칸이 있다. 이쯤 되니 게임을 설계한 사람이 궁금할 지경이다. 돈을 따게도 하고 모두 잃게도 하며 게임을 이어가게 하고 운에 따라 좋은 날도 겪고 힘든 날도 겪게 하며 돌림판을 돌리게 한다. 온갖 희로애락을 겪게 하다 마지막에 게임은 끝이 난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빙글빙글 돌며 운이 좋았다 나빴다 한다. 그래도 게임이 괜찮았기에 어느 날 다시 그 인생게임을 함께 하곤 했다.
인생이라는 게임이 있다면 그 산 같은 굴곡진 곳에서 '쉬어가기'도 만나기를 바란다. 좋은 날과 나쁜 날이 왔다 갔다 하는 인생에서 잠시 한숨도 돌리며 '멈춤'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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