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약함을 쥐고 흔드는 사람이 가장 잔인하게 느껴졌다. 이런 공격성은 대부분 가까운 사람에게서 나온다. 속사정을 알고 있거나 나의 약점을 잘 알아 아킬레스건을 찌를 수 있는 이들이다.
세상에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고 서로 미친 듯이 경쟁하며 살지만 그래도 마음을 주고 믿으려 했던 이에게 뒤통수를 세게 맞으면 참 허무하다. 그로 인한 공허감이 스스로를 얼마나 해하는지. 내가 잘못한 게 있는지 백 날 헤아려봐도 어긋난 질투는 파괴적이기만 할 뿐이다.
믿을 사람 없다는 그 말이 진피를 넘어 속살까지 파고들어 찔러대니 그대로 앓는 수밖에 없다. 모르는 이에게 당하는 것보다 친하다고 여겼던 이에게 당하는 게 더 힘든 이유는 마음까지 크게 다치기 때문이다.
사기를 당하든 말실수로 무례를 범하든 그 어느 쪽이든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어 혼란스럽다. 선과 악이 교차되는 인간 본성에 대한 본질적 회의감에 '나'라는 세상이 휘청인다.
'인생 혼자지. 기대일 사람 없지. 원래 그랬지.' 수차례 되뇌었지만 어느새 말랑해진 틈 사이로 뜨거운 마그마처럼 정이 흘렀고 현무암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마음이 굳었다.
그런 반복이 쌓여 화산섬처럼 외로운 이가 되었다. 눈물도 마른 시꺼먼 잿빛이 되어버렸다.
동화는 끝이 났다. 순수한 관계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했음을 알아채고 어린 시절의 동화책은 덮어야 할 때였다. '어떻게 변하니.'라고 묻지 않기로 했다. 그때는 우리 모습이 그러했고 지금은 달라진 것이었다. 오해든 입장의 차이든 각자 먹고살기 힘든 중년을 지나며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어진 사람들이 남았을 뿐이었다.
변해버린 이들을 붙잡고 이해시킬 힘조차 없었다. 내 마음이 저 스스로 변하는 것처럼 붙들고 말한다고 달라질 이도 없다. 구멍 뚫린 돌들이 구멍 난 돌들에게 외치는 세상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집착과 기대를 바다에라도 버리고 버려야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나의 섬에 다시 나무도 자라고 꽃도 피고 새도 찾아왔다. 이유도 묻지 않고 나무도 심어주고 꽃도 피워 주는 이도 나타났다. 바람을 타고 오고 물처럼 흐르듯이 오기도 했다. 따뜻하고 좋은 이들과 다시 인연을 맺었다.
허무하기만 하란 법도 없고 외롭기만 하란 법도 없는 것 같다. 섬이란 것은 서로 이어지기도 하니까.
외로움으로부터 쉬어봐야 홀로 설 수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섬이 되어 본 사람은 스스로 혼자 일어선 사람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의 섬을 정성스레 가꾼 사람은 그 섬에서 편히 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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