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많이 어렸을 때 첫째의 사춘기를 맞이한 선배맘이 자동차 안에서 운다고 했다. 그러다 지나가는 동네 엄마에게 들켰다고. 그 당시 내 나이도 어렸고 아이의 사춘기가 주는 무게를 감히 짐작하지 못했기에 안타까웠던 기억만 남아있다.
훗날 나의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 집 앞 공원 벤치에 앉아 혼자 숨죽여 울다 보니 이해가 되었다. 왜 그랬는지. 나 또한 자동차 안에서 눈물이 터지기도 한다는 것을.
너무 힘들 때는 혼자 운다.
점점 울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간다. 나약해 보일까 봐. 그리고 여러 다른 이유로 울음이 미뤄진다.
내 앞에 우는 지인들에게 너무 공감을 하다 보니 며칠씩 온몸이 아프기도 했던 나는 더더욱 사람들 앞에서 울지 못했다. 내가 상대방 앞에서 마음 놓고 울 때는 상담사 앞에서 뿐이었다.
왠지 모르게 내 앞에서 자꾸 우는 지인들이 늘어가고 하소연하는 샤람들이 늘어갔을 때 너무 버거워지고 말았다. 잘 들어주는 나를 상담사처럼 여기나 싶을 만큼 왜들 몰려들었는지 모르겠다. 거리를 두거나 정리를 해야 했다. 나를 상담자라고 말하는 한 명에게는 나도 힘드니 상담을 하러 가시는 게 어떻겠냐 넌지시 이야기했다. 그 후 이런저런 일로 막상 내가 힘들어지니 그 많던 이들 중에는 의지되는 이 하나 없었다. 그렇게 다들 와서 하소연하고 의지하더니 나는 막상 혼자였다. 함께 울어준 건 친구 한 명과 지인. 그렇게 둘 뿐. 그 후 인간관계에 회의가 많이 들었다.
마음의 과부하가 걸릴 만큼 사람 만나지 말고 거리를 지켜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편한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이 굴지 말자고.
그로 인해 마음 아프고 충분히 외롭고 많이 울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우는 것도 '쉼'이다.
눈물에는 치유 효과가 있다. 실컷 울고 나면 북받치던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울고 싶을 때 슬픈 영화를 보며 울어도 효과가 있었다. 마음이 눈물로 정화되는 것 같았다. 자꾸 울면 안 된다고, 울지 말라고 하는데 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맘 때면 들려오던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가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라는 노래가 있었다. 아이는 울면 선물을 못 받겠지만 어른의 눈물은 선물이다. 눈물 그 자체가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울고 싶어도 다 큰 어른이라 울지 못하고가슴속에 눈물을 모은다. 숨죽여 울지 말고 실컷 울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마음 저 끝까지 후련해지도록. 화나고 가슴이 답답해서 뭘 해도 풀리지 않을 때 술 한잔에 눈물이 나면 울고 차 안에서 음악을 틀어 놓은 채 울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