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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숲에 서서

by 서로소

대숲 한가운데 서면 바람은 대나무 사이를 흐르며 숨죽여 운다. 댓잎을 호롱호롱 흔들며 울지 않은 척 들고난다.


다들 숨죽여 운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또는 안 보일 것 같은 곳에서. 아이가 많이 어렸을 때 첫째 아이의 사춘기를 맞이한 선배맘이 자동차 안에서 운다고 했다. 그러다 지나가는 동네 엄마에게 들켰다고. 당시 내 나이도 어렸고 아이의 사춘기가 주는 무게를 감히 짐작하지 못했기에 그저 그분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기억만 남아있다.

훗날 나의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 집 앞 공원 벤치에 앉아 혼자 숨죽여 울다 보니 이해가 되었다. 그때 그분이 왜 그랬는지. 나 또한 자동차 안에 혼자 앉아 있을 때 눈물이 터지기도 한다는 것을.

너무 힘들 때는 혼자 운다. 숲에 바람이 울듯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울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간다. 나약해 보일까 봐 그리고 여러 다른 이유로 울음은 미뤄진다.

내 앞에 우는 지인들에게 너무 공감을 하다 보니 며칠씩 온몸이 아프기도 했던 나는 더더욱 사람들 앞에서 울지 못했다. 나처럼 다른 이들을 상하게 할까 걱정되었다.

내 앞에서 자꾸 울고 하소연하는 샤람들이 늘어갔을 렵에는 너무 버거워지고 말았다. 나이 들수록 사는 게 힘들어진 탓이었을까. 마흔, 쉰을 넘기며 점점 더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나는 어느새 주변 사람들의 대나무숲이 되어버렸다. 스로 소진되기 전에 거리를 두거나 정리를 해야 했다. 살다 보니 이런저런 일로 힘든 날이 나에게 수없이 닥오고 있었다. 러자 그 많던 이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다들 와서 하소연하고 의지하더니 그런 날들 속에 나는 혼자 남겨졌다.

그 후 인간관계에 회의가 많이 들 한동안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마음의 과부하가 걸릴 만큼 사람을 만나지 말고 거리를 두어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편한 사람들을 만나고 나 또한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이 굴지 말자고 다짐하며 어른 아닌 어른이 되어갔다. 그로 인해 마음 아프고 충분히 외롭고 많이 울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운다는 것은 '쉼'이다.

눈물에는 치유 효과가 있다. 실컷 울고 나면 북받치던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컷 울고 싶을 때 슬픈 영화를 보며 울어도 효과가 있었다. 마음이 눈물로 정화되는 것 같았다. 자꾸 울면 안 된다고, 울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겨울이 되면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가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라는 노래가 려왔다. 이는 울면 선물을 못 받겠지만 어른의 눈물은 선물이 아닐까 싶다. 눈물 그 자체가 신이 주신 선물이 생각이 든다. 울고 싶어도 다 큰 어른이라 울지 못하고 가슴속에 눈물을 모은다.

숨죽여 울지 말고 실컷 울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마음 저 끝까지 후련해지도록 말이다. 화나고 가슴이 답답해서 뭘 해도 풀리지 않을 때 술 한잔에 눈물이 나면 울고 차 안에서 음악을 틀어 놓은 채 울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어른도 힘들 때는 울어도 된다. 다 울고 나서 웃으면 지 않는가. 다가 웃는 어른은 스스로에게라도 선물을 주면 좋겠다. 잘 견뎠다고 토닥이며.


대나무도 속을 비운다. 속을 비울 때마다 마디마디가 굵어지며 자란다.

나부터 눈물을 가슴에 모으기만 하지 말고 울고 비워내야 바람도 드나드는 단단한 대나무럼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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