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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Nov 19. 2024

겨울의 곰처럼

심심한 겨울 거리에 백화점, 상가들이 크리스마스를 위한 장식을 하기 시작했다.

초록 잎과 붉은 꽃, 반짝이는 전구로 화려하게 수놓아진 장식들을 바라보면 따뜻한 연말을 기대하게 된다. 사실 연말연시에 파티를 거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면서 살짝 들뜨는 기분이 든다.

달콤하게 보이는 케이크, 예쁜 과자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먹지 않아도 행복하다. 어린 시절 빵 집 쇼케이 앞에서 마냥 행복해졌던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다.

스산해진 겨울이 다가오고 마음이 추워질 때 캐럴이 들려오면 평온하고 따스해진다.

겨울은 '쉼'의 계절이다

짙은 녹음을 뽐내던 나무들도 화려한 단풍을 한껏 뽐내고 난 뒤 잎을 떨구고 '쉼'을 갖는다.

어릴 때는 흰 눈이 내리는 겨울이 좋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춥고 황량한 겨울이 싫어졌었다.

그러나 이제는 잿빛 겨울도 다시 좋아해 줘야 할 것 같다. 생각을 달리 해보면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온기를 나눌 수 있고 새로운 희망과 다짐을 품을 수 있는 시즌이 겨울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겨울을 좋아했던 것 같다. 눈이 내리면 뽀득뽀득 눈을 밟으며 놀고 버킷리스트를 써가며 새해의 희망을 품었던 계절이었기 때문이다. 겨울은 지나가는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 맞이하는  해를 시작하는 교차점이니 삶에서 아주 의미 있는 계절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산 적이 별로 없다. 어릴 적엔 부모님의 뜻대로 살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계속 삶의 방향키를 남에게 맞춰야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기에 너무 힘들어서 울고 좌절하고 원망한 적이 수없이 많다. 그러던 중 힘든 시간을 버티기 위해 우연히 글을 쓰러 갔고 나는 내 삶의 방향키를 서서히 내게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한참 후 책을 읽고 글쓰기를 좋아하던 어린 내가 어렴풋이 작가가 되고 싶어 했었다는 꿈이 기억났다.

내가 평안한 삶을 살았더라면 그 삶에 안주하여 나는 글을 쓰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이 뜻대로 살아지지 않아 글을 쓰고 싶었다.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글로 써 내려가고 싶었고 답답하고 힘든 마음을 그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다. 삶에 지쳐갈수록 삶에 대한 끈을 잡기 위해 쓰는 일이 나의 동아줄이 되어주기 바랐다. 아이러니하게 그랬다. 삶을 놓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살고 싶은 강렬한 마음이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하며 화분에 물을 주는 소소한 일상을 살고 글을 쓰며 쉬엄쉬엄 살아가기로 했다. 겨울의 곰들이 살아있지만 잠을 자며 쉬듯이 말이다. 쉬듯이 살고 살듯이 쉬어가기로 했다.

마음 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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