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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더는 즐겁지 않을 때

by 서로소

좋아하던 것들이 모두 의미를 잃었다. 본래의 빛을 잃어 바래고 오래된 벽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을 해도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렘 가득했던 여행조차 들고 피곤하게 느껴지고 감흥이 떨어졌다.

삶이라는 여정이 그다지 즐거울 것도 없이 흘러간다고 느껴질 때마다 망망대해럼 홀로 떠 있는 느낌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각자의 인생만이 중요해졌다. 어릴 적에는 소중했던 교우관계도 느슨하다 못해 헐거워졌다. 다들 각자의 가정을 꾸리느라 꿀벌마냥 바빴다. 혼자여도 일과 취미 활동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특별히 맛있는 것도 없고 그다지 재미있는 것도 없으니 흡사 메마른 식물이 된 듯했다.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점점 사라져가니 잘 살고 있나 싶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확인할 길 없었다.

재미없었다. 사는 재미.

대학생 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늦은 새벽까지 불을 밝히고 장사하는 동대문 시장을 한 번씩 다녀왔다.

좁은 통로를 커다란 옷 보따리를 이고지고 오가는 남자들과 쇼핑을 하러 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 인파 속을 떠밀려 다니며 가격을 깎으며 흥정하고 호객하는 시끌시끌한 시장을 한 바퀴 돌다. 다리는 아팠지만 가슴에 작은 꽃이 하나 피는 듯 했다.

열심히 장사하고 뛰어다니며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과 부대끼고 난 후에는 가슴속에 알 수 없이 북받치는 감정이 들곤 했다. 눈물이 났다. 이 틀 무렵 포장마차에 앉아 아침으로 떡볶이와 어묵을 먹고 집에 돌아 한 숨 푹 자고 일어났다.

그렇게 새벽 시장을 한 번 다녀오면 검불 같은 작은 삶의 불꽃이 꿈틀대며 다시 일어나곤 했다.


지금도 가끔 재래시장에 들르면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 자리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장사를 하며 매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말 못 할 감동을 받는다.

빠르게 만두를 빚고 꽈배기를 튀기고 바구니에 야채를 진열해 두고 옆 노점과 잡담을 나누는 상인들에게서 사람 사는 맛이 난다. 그리 재미난 일상도 아닐 테고 매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늘 비슷한 얼굴로 하루를 열심히 보내는 성실한 개미 같은 그분들이 존경스럽다.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고되고 힘든 일상이 왜 나에게 위안이 되었던 걸까. 박한 삶의 소중함이 느껴져서을까.

시장을 혼자 가면 사람으로 북적이는 곳에서 느껴지는 묘한 외로움이 있었다. 그리고 시장 전체 투박하게 흐르는 정이 느껴졌다. 그곳에는 오랜 장사로 산전수전 다 겪어 이런저런 사람을 대하는 게 자연스러운 상인들이 있었다. 나는 시장에 서서 그들에게서 삶을 배우 있었다. 나물을 담아주는 할머니의 마디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을 보았다. 한 줌 더 넣어주는 후한 인심을 보여주는 넉살 좋은 아주머니의 환한 얼굴을 보았다.

시장은 다양한 물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는 재미가 뭐 다른 있을까. 아이 어릴 때는 아이 재롱 보는 재미에 살고 취미가 있으면 또 그 취미를 즐기는 재미에 살고 저녁이면 쉬면서 tv를 보고 주말이면 치킨도 시켜 먹는 그냥 그렇게 사는 게 재미테다.

사는 게 재미없으면 쉬라는 신호겠지. 이렇게도 쉬어보고 저렇게도 쉬어보고. 안 하던 것도 해보고 하던 것도 안 해보는.

살아내다 보면 한 번씩 재미있는 날도 있겠지 하고 묵히 오늘도 삶의 길을 는다.

그렇게 삶의 군불을 계속 지피다 불씨가 다하면 다시 시장을 찾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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