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로소 Nov 16. 2024

편한 곳이 쉴 곳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아무리 대궐같이 화려하고 즐거운 곳이 있더라도 결국 내가 머무르고 싶은 곳은 작지만 편한 내 집이라는 노래 소절이다. 세월의 때가 묻은 소파에 누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무장해제되는 장소가 내 마음이 편한 곳이다.


가끔 누군가의 집에 쉬러 간다. 그곳은 내 집보다 편하게 느껴지는 곳일 것이다. 엄마의 집일 수도 있고 친구의 집일 수도 있다. 어린 시절 편안하게 느꼈던 곳일 수도 있다. 치열한 일상을 보내는 이에게는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곳일 것이다.


어린 시절 안 방에는 뜨끈뜨끈한 아랫목이 있었고 온돌 열에 장판은 누래져 있었다. 빨간 꽃들이 그려진 밍크 담요가 한 장 있었고 담요 안에는 뚜껑이 가지런히 덮인 따스한 밥공기가 놓여 있기도 했다. 밥때가 되면 먹음직한 한 상이 차려졌다. 따뜻한 담요 안에서 뒹굴거리다 TV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생각 없이 웃던 그 집 그 안방으로 가끔 가고 싶다. 화장실도 멀어 불편했는데 호텔보다 편안했던 기억 속의 장소다. 이유를 하나하나 딱히 댈 수 없을 만큼 그저 배부르고 편하고 따뜻해서 좋았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여행지에 가도 해방감에 편할 때가 있다. 쨍한 컬러의 원피스를 용기 내어 입어도 아무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내가 유명한 사람이 아님에도 그저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만으로 참 편안하다. 일하거나 루틴 속에서 뺑뺑이 돌고 있었을 시간에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다. 자유로우면 여유가 생기고 그러면 편해진다.


편한 곳에는 편한 사람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고 시시껄렁한 잡담을 해도 맞장구쳐주는 동네 친구일 수도 있다. 수다 넘치는 사랑방 같은 동네 미용실이 편할 수도 있고 취미를 함께 하는 모임일 수도 있다. 소위 티키타카가 되는, 마음이 맞는 사람이 편하다. 알게 된 기간과 상관없이 결이 맞는 사람들이 있는 장소가 편하다.


어떤 때는 아무도 말 걸지 않고 익명성을 보장해 주는 곳이 편하다. 프랜차이즈 카페라든가 대형 카페 같은 누가 누군지 모를 그런 곳이 편할 때가 있다. 어느 날은 인사해 주는 단골이 불편해서 낯선 곳을 간다. 사람에게 지쳐 혼자 있고 싶은 날이었나 보다.


나이가 들수록 편한 곳이 줄어지고 있다. 엄마의 집도 어느 순간부터 마냥 편하지가 않고 라면 끓여 먹고 놀던 친구 집도 마냥 편하지 않다. 아지트로 여기던 카페도 이제 내 집만큼 편하지가 않다. 절절 끓는 아랫목은 없지만 가족의 온기가 있는 내 집이 가장 편하다. 뭘 입어도 누가 뭐라 할 것이며 안경 쓰고 머리는 산발하여 못생긴 얼굴로 돌아다녀도 신경 쓰일 게 없다. 밥이 있고 신경 쓰지 않고 뒹굴거릴 공간이 있으니 편다마다.


사람에게는 편한 곳이 쉴 곳이다. 호텔에 가서 편하다면 호텔에 가서 쉬면 되고 혼술(혼자 술)과 혼커(혼자 커피) 마실 나의 아지트 같은 곳이 있다면 그곳에 가서 쉬면 된다. 여행을 가서 편하면 그곳으로 훌쩍 떠나 쉬고 엄마 밥을 먹으며 쉬고 싶다면 엄마 집에 가고 연인이 편하면 연인이 있는 곳이 쉴 곳이다. 혼자서 편할 때 혼자 쉬고 편한 사람과 있을 때 편하다면 그곳으로 가면 그만이다. 편한 곳이 사람의 품이면 그곳으로 가서 쉬고 어느 장소라면 떠나 쉬어보면 어떨까. 내가 가장 편안한 나일 수 있는 곳으로.



이전 09화 잠깐 쉬어도 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