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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소 Jun 29. 2021

뜻하지 않은 거리두기 중

당신과 나의 보통의 날들

소아환자 안내 소아환자 3 ○○○.

흐린 백색의 전광판 환자 현황을 알려주고 있다. 저녁의 응급실은 평일인데도 붐비고 모두 다른 이유로 응급실 앞 의자에 앉아 있다.


아기였을 때부터 유독 몸이 약했던 아들은 병원 출입이 여전히 잦다. 어릴 적에는 폐렴이나 기관지염, 장염 등으로 잦은 입퇴원을 반복하더니 그 이후로도 소아과, 내과, 정형외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안과 등을 자주 다녔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종합 병원이었다. 아이가 아프다는 말에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아이는 자주 아프고 다치고 병원을 가고 약을 타러 약국에 갔다.  건강해 보이는 체구와 달리 병원 신세를 많이 지고 있다. 먼 시댁에 가서도 아파서 근처 소아과를 다니고 사는 거처를 옮길 적마다 근처 병원에 이름을 올렸다. 응급실도 간간히 오다 보니 이제는 놀란 마음으로 다른 가족들이나 지인에게 연락을 취하는 일도 지 않게 되었다.

 "또 아파? 자주 아프네. 또 입원이야?" "빨리 낫길 바랄게."

런 말을 너무 많이 들어 더 이상 위로도, 위안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평생 어쩌다 한 번 들었을 말을 만성적으로 듣다 보니 입퇴원 후에는 조용히 몸과 마음을 가다듬으며 쉬고 싶은 생각만 든다.


이러하다 보니 내게 병원은 무서운 곳이라기보다 친밀한 곳이고, 워낙 많이 오다 보니 아이는 아기 때도 다른 아기보다 아픈 것도 잘 참고  수액 잘 맞아서 칭찬 듣곤 했다. 돌 즈음 혼자 영차 하고 일어서서 박수를 쳐주었던 곳도 병원 입원실이었고 결혼기념일도 병원에서 맞게 되어 케이크를 소아과 병동 사람들과  나누어 먹기도 했다.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책과 레고를 가까이하며 지루한 병원 생활을 견뎠다. 젊은 인턴 여의사가 아이를 귀여워해 입원해있는 내내 매일같이 놀아주러 오기도 하고 유모차 대신 병원 내에서 휠체어를 밀어줘도 아이는 깔깔대고 웃어주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 빡빡한 학교 생활에 아이는 많이 지쳐했는데 도와줄 게 없었다. 낮잠을 틈틈이 자게끔 해주고 학원을 끊고 음식이나 영양제를 잘 챙겨주었지만 체력이 좋지 않은 아이에게 무리가 왔는지 응급실과 병원을 다시 자주 찾고 있는 현실이다. 학업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시기라  애쓰다가도 이렇게 건강이라는 인간다움의 가장 중요한 기본과 맞닥뜨릴 때면 한없이 겸허해지고 만다.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지는 병원에 오면 금세 느낄 수 있다. 생이란 것이 살아있음 전제로 하고 건강이 사람다움의 가장 큰 덕목임을 아픈 환자들을 맞닥뜨리는 병원에 올 적마다 새삼 깨닫는다. 그러기에 나는 "건강하세요. 건강을 빕니다. "라고 말할 때 입버릇 된 인사치레가 아닌 정말 진심을 담 말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아이는 원인모를 염으로 입원하였고 나는 사춘기를 맞은 아이의 마음까지 헤아려야 하는 간병에 지쳐 퇴원 후 휴식기를 가져야 했다. 험을 코 앞에 앞두고 학교조차 못 가고 배가 아프다 뒹구는 아이를 바라보며 래저래 근심을 안은 내 속만 타들어갔다. 입원해도 무던한 아이였는데 사춘기 호르몬 때문인지 변덕은 또 어찌나 죽 끓듯 하던지 모른다. 아파서 뿌루퉁한 기분도 맞춰주고 다 컸다고 창피해하는 대소변 통 받는 거 보조하고 아프다 하면 간호사도 불러주느라 내 인내심을 쥐어짰다. 배가 아플 때는 그렇게 짜증이 그득하더니 병이 치유되어가자 아이의 얼굴이 비로소 해맑아졌다. 아과 병동에서 만난 인연들도 퇴원 후 외래에서 다시금 만나 건강을 빌어주었다.


유독 올 한 해 가족들 모두 병원 출입이 잦아 내 마음은 해질 대로 해졌다. 힘든 한 해를 잘 견뎌보려고 많은 애를 썼지만 내게도 번아웃이 와버렸는지 마음까지 곧잘 우울해져 어디론가 숨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울 지경이다. 내 근심을 전달하고 싶지도 않고 다른 근심을 얹고 싶지도 않은, 마음의 여유라고는 한 푼도 없는 과부하 상태인  것 같다. 이로 인해 뜻하지 않은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본디 마음이란 것이 몸의 컨디션에 지배받기 쉬운 것 아니겠는가. 잘 자고 잘 먹는, 삶의 아주 기본적인 건강을 나부터 늘 살펴야 함을 잊지 않으려 노력해 봐야겠다. 그러다 보면 마음도 유연해지고 여유가 생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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