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인간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by 시소

강아지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가장 가까운 곁을 지켜왔다. 높은 지능과 다정한 사회성, 그리고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장해제되는 그 사랑스러운 외모 덕분이다. 하지만 그 '사랑스러움'이라는 함정이 한 생명을 벼랑 끝으로 내몰기도 한다는 사실을, 많은 견주는 간과하며 산다.


​많은 이들이 반려견을 인형처럼 대하곤 한다. 잘못된 행동조차 "어머, 예뻐라"라며 웃어넘기고, 나쁜 습관이 깊게 박히는 과정도 그저 귀여운 애교로 치부한다. 그렇게 교육받지 못한 본능은 자라날수록 날카로운 발톱이 되고, 그저 예쁘다는 이유로 방치된 시간은 결국 그 아이를 ‘문제견’이라는 낙인 속에 가둬버린다.


​특히 입질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어린 강아지의 자그마한 이빨이 주는 따끔함은 훗날 성견의 치명적인 공격으로 변한다. 이때 "안 돼"라는 단호한 선을 긋지 못하는 견주들은 마음이 아파서 도저히 혼을 낼 수 없다고 말한다. 아이의 자유를 뺏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픈가? 그렇다면 문제 행동을 품은 채 자라날 아이의 미래는 왜 아프지 않은가.


​실제로 수많은 물림 사고의 뒤편에는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서려 있다. 그 오만의 끝은 참혹하다. 주인의 무책임 속에 방치된 개들은 타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그 대가로 비참하게 버려지거나 안락사라는 차가운 최후를 맞이하기도 한다. 죄 없는 생명이 무지한 주인 때문에 목숨으로 그 값을 치르는 것이다.


​일전에 가까운 이에게 블로킹의 필요성을 역설한 적이 있다. 성견이 되어 강도 높은 교정을 받는 사례들, 심지어 파양되고 안락사 당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보여주며 경고했다. 지금 이 작은 훈육을 외면하면, 훗날 이 아이가 겪어야 할 고통은 수백 배가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끝내 단 한 번의 단호함조차 보여주지 못했고, 되려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시골에서는 사람을 무는 개를 아주 강하게 교정하기도 한다. 야만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놀랍게도 그 개들은 교정 후 가족들과 평온한 일상을 보낸다.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시골 어른들은 그저 올바른 행동교정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 방식이 투박했을 뿐, 마음은 분명한 가족이고 공존이다.


​부모는 아이의 문제 행동을 방관하지 않는다. 타인의 진심 어린 조언을 비난으로 곡해하며 자신의 무능을 감추려 들지도 않는다. ​당신이 사랑이라 착각하며 베푸는 그 방임이, 사실은 아이의 목줄을 서서히 조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무지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부모 밑에서, 강아지는 단 한 번도 올바르게 살아갈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불행해진다. 진정으로 그 작은 생명을 위한다면, 이제는 그 삐뚤어진 애정을 거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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