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길던 장마였다. 그날은 아침부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소리에 집 밖이 소란스러웠다. 창문 너머 할머니와 엄마가 장독대를 가지고 씨름하는 소리가 들렸다. 집 천장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세찼다. 불길함으로 잠에서 깼다. 고요한 방에 누운 채로 엄마를 찾았다.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지붕을 때리듯 내리는 비는 내 목소리마저 덮쳐버렸다. 이불을 걷어차고 방에서 나와 현관으로 갔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 앞 작은 마당은 빗물로 검게 잠겨있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현관을 밟고 한두 계단 내려가니 흙탕물이 내 발목을 덮쳤다. 엄마와 할머니는 비에 쫄딱 젖은 채 물에 뜨는 장독대와 의자들을 옮기느라 우왕좌왕이었다.
“엄마, 뭐해?”
“괜찮아. 들어가 있어.”
괜찮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기 전 불길했던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현관문을 닫을 새도 없이 쫓기듯 누워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방 한편에 놓여있던 매트리스를 걷어 올리고 그 밑으로 발을 짚었다. 이미 방 안으로 들어찬 빗물이 내 마른 발바닥을 축축이 적셨다. 방금까지 내가 누워있던 이부자리가 들어찬 빗물과 맞닿아 있었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 가슴이 아팠다.
‘괜찮아, 괜찮아.’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나는 곧장 옷 방으로 갔다. 책가방을 열고 지갑과 휴대폰, 노트북을 챙겨 넣었다. 집 밖에서 키우던 개도 무언가 불길했는지 생전 들어와 본 적 없는 집안에 들어와 연신 끙끙거렸다.
“소희야. 나와! 지금 당장 나가야 돼!”
집 밖에서는 할머니가 모든 것을 그만두고 나오라고 소리쳤다. 현관을 등지고 앉아 가방을 챙기던 나는 곧바로 가방을 메고 옆에 붙어있던 개를 껴안았다. 뒤를 돌자 열린 현관문으로 집안에 들어차고 있는 빗물이 보였다. 잠에서 깨어난 지 15분 만에 쏟아지던 비는 이내 내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온 신발은 둥둥 떠다녔고 나는 아무것도 신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 흙탕물을 맨발로 헤집고 나왔다.
집이 물에 찼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담겨있는 집이 물에 찼다.
시집갈 때 챙겨가려고 한 샤프 전축, 이번에 새로 장만했던 냉장고, 월급 받아 부모님께 선물한 TV, 탈수할 때 조용해서 좋다던 세탁기. 그 외 모든 세간살이가 물에 잠겼다.
할머니, 엄마, 그리고 나는 장대비에 우산도 없이 집을 나왔다. 엄마는 빗물에 말려 들어간 바지 아래 허연 살을 드러냈다. 할머니는 젖은 티셔츠 안으로 앙상한 어깨를 비추었다. 우리 세 여자는 우산도 없이 물이 차고 있는 집을 바라보기만 했다.
“엄마. 다른 건 다 새로 사면 되는데, 엄마 책은 어떡해.”
엄마에겐 오래된 책장이 있었다. 5단으로 된 직사각형 모양의 나무 책장과 그 옆에 나란히 붙어있던 하늘색의 낡은 책장이었다. 그 책장 속으로는 오래돼 누렇게 색이 바랜 책들이 주욱 꽂혀 있었다. 엄마가 스무 살 무렵일 때부터 모아둔 책이었다. 엄마의 책장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인생과 사랑이라는 제목의 책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 앞에 앉아 엄마 책을 가지고 놀곤 했다.
아마 열 살도 안 됐던 것 같다. 일주일 용돈으로 천 원짜리 몇 장을 받았었다. 나는 그 돈을 받으면 곧장 엄마의 책장으로 갔다. 행여나 오빠가 내 돈을 가져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엄마 책을 꺼내 그 속에 받은 돈을 몽땅 숨겨버렸다. 그때 내가 돈을 숨기려 꺼내든 책은 공지영의 소설 <고등어>였다. 나에게 그 책은 유일하게 겉표지에 물고기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림책’이었다.
그 ‘그림책’도 이번 장맛비를 피해 가지는 못했다. 물에 잠겨 쓰레기더미로 버려졌다. 동시에 책 속에 있던 엄마의 흔적도 함께 버려졌다. 나는 그제야 엄마의 밑줄이 그리워 똑같은 새 책을 샀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림책’이 아닌 소설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으로 내가 그 책을 펼치던 나이는 아마 주인공인 명우의 딸아이 정도였을 거다. 시간이 지나 나는 이제 스물일곱이 되었고, 주인공 명우가 안개 속에 갇혀있었던 것 같다고 한 그 나이가 되었다. 자유를 찾아 청춘을 희생으로 보낸 명우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스물한두 살 나이에 강가에 나가 강물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에조차 죄책감을 가졌던 세대가 또 있을까? 강물이 그런데 하물며 사랑이야.”
정치적 독재에 맞서 자유를 찾기 위해 헌신하던 1980년 스물일곱 명우와는 다르게 2020년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스물일곱에 살고 있다. 명우가 어린 시절 바닷가에 놀러 가 물속에서 잠수하다 본 적 있는 ‘자유로운 은빛 고등어 떼’처럼 말이다. ‘화살처럼 자유롭게 물속을 오가는 자유의 떼’ 그 모습이 바로 나였다. 명우와 다르게 나는 먹고 싶은 걸 먹으면서도, 입고 싶은 걸 입으면서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어떤 죄책감 같은 건 느끼지 못한다. 자유로움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들의 말마따나 ‘결혼은 최대한 뒤로 미루며 연애만 할 수 있는 세상’이 지금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쩌다, 운수 좋게 그들의 다음 세대로 태어나 그들이 일궈 세운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억압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그들이 일궈놓은 자유를 누리기만 한 내가 감히 명우의 푸르지 못한 청춘을 헤아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이 책이 새 책이 아닌 엄마의 낡은 책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책’으로 보던 시절의 누런 책이었으면 좋았겠다고 말이다. 밑줄을 긋고, 또 한 페이지의 귀퉁이를 접었을 엄마의 흔적을 보며 그렇게 같이 읽었으면 했다.
한동안 나는 엄마의 책장에서 자주 책을 봤다.
내가 대학 때였다. 나는 과제를 하기 위해 참고할 책을 사야 했지만 사지 않았다. 엄마에게는 이미 그 책이 있었다. 레오버스카 글리아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였다.
“당신이 새로 산 차를 빌려 가서 흠집을 냈던 거 기억나요? 노발대발할 줄 알았는데, 당신은 그러지 않더군요…”
내용 중 <당신은 그러지 않더군요>라는 제목의 작자 미상인 시가 좋았다. 투덜대느라 사랑할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던 그 시가 좋았다. 겉모양은 낡아 볼품없을지라도 내용만큼은 꽤 근사했던 책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엄마의 책에서 시를 선물로 받기도 했었다.
그러다 직장을 구할 나이가 되었을 때 막막함으로 다시 엄마의 책장을 찾은 적도 있다. 나는 <젊은이여 무엇이 문제인가> 앙드레 모르와 책을 꺼냈다. 엄마가 귀퉁이를 접어놓은 페이지를 따라 읽다 이런 구절에 시선이 멈췄다.
“나는 어느 곳에서 어떠한 직업에 종사하면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하고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본다. 하지만 어느 사람도 이러한 인생의 문제를 내놓는 사람에게는 대답할 수가 없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신의 길에 대하여 고민을 하며, 그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게 막막함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는 생각에 잠시 위로를 받기도 했었다.
장마가 끝나고 나서는 남아 있는 엄마의 책 중 <휘파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엄마의 필사책을 자주 들춰본다. 용케 수해에도 잘 견뎌준 책이었다. 엄마는 한결같은 글씨로 꾸준히 다른 글을 썼다. 나와 다르게 엄마의 글씨는 단정하고 곧았다. 그 곧은 글씨는 차분한 엄마를 닮고 싶게 했다.
“엄마는 어떻게 매일 글을 썼어?”
“그냥.”
나는 ‘그냥’ 할 수 있는 엄마의 꾸준함을 따라 필사를 했다. 온종일 급한 나에게 하는 일종의 ‘수련’ 같았다.“무엇이든 나누어 가져라. 공정하게 행동하라. 남을 때리지 말라.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놓아라. 자신이 어지럽힌 것은 자신이 치우라. 내 것이 아니면 가져가지 말라 …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 이 속에 들어 있다. 건강과 사랑, 그리고 기본적인 위생까지. 여기에서 아무것이나 하나를 골라 세련된 어른의 말로 고쳐서 적용해보라. 그러면 딱 들어맞고, 분명하며, 확고해진다.”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의 일부이다. 눈으로 읽을 때와 다르게 손으로 쓰니 속도가 느렸다. 그러나 느릴수록 천천히 볼 수 있었고, 천천히 볼수록 글이 주는 울림은 커졌다. 종종 그런 종류의 즐거움을 알려준 엄마에게, 또 엄마의 책장에게 고마워지기도 했다.
천장을 뚫을 것처럼 비가 오던 그날, 집에 들어찬 물은 내 허리춤 정도에서 멈췄다. 그 사달이 나고 집에 있던 물건은 대부분 버려지고 없다. 많은 책 또한 물에 잠겨 버려지고 거의 없다.
그중 물 먹은 내 일기장은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흙탕물 범벅이 된 그 일기장을 한 장씩 떼어내 사이에 휴지를 끼워 몇 날 며칠을 말렸다. 그런 나를 엄마는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내가 출근을 하면 엄마도 낮 시간 내내 서로 엉겨 붙은 일기장을 떼어 말려주었다.
아빠는 자신이 가진 하루의 모든 시간을 집을 복구하는 데 썼다. 아빠의 허리는 디스크가 두 개나 터져 흘러내렸고 그 통증으로 다리를 절었다.
이젠 초록 잎 무성하던 여름은 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계절이 되었다. 우리에게 생채기를 남기고 간 여름 장마는 석 달이 지나고 가을이 돼서야 제집 같은 모양새를 되찾았다.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 집은 복구되었지만, 엄마의 책장은 없었다. 새 책장을 사서 책을 꽂아보았지만, 엄마의 책은 없었다.
계절이 바뀌고 책장이 바뀌어도 나는 아직 무심결에 엄마의 책을 찾는다.
엄마의 밑줄이 그립다. 엄마의 낡은 책장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