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끌림

by 시선

회사를 그만둔 지 이 년째다. 시골에 있는 부모님 집에 돌아와 아르바이트하며 지내다 보니 벌써 그렇게 되었다.

그동안 새로운 일을 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서울에 있는 회사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어보기도 했었다. 물론 돌아오는 연락은 없었지만 말이다.

나는 매일 아침 습관처럼 취업 포털 사이트를 켠다. 그리고 검색 창에 ‘에디터’라고 입력한다. 검색 결과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세상에 일할 곳은 정말 많다. 그러나 문제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도 성격이 있듯 회사에도 성격이 있다. 그리고 그 ‘성격’은 공고의 문체나 이미지만 봐도 대략 알 수 있다. 나는 공식적인 공고에 휘황찬란한 이미지와 함께 ‘갬성’, ‘인싸’와 같은 인터넷 용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넣는 회사, 또는 담당업무에 관하여 ‘전반적인 마케팅 업무’와 같이 불친절하게 설명을 하는 회사에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런 곳에 미래를 약속하느니 차라리 지금처럼 집 앞 빵집에서 일하며 남는 시간에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가다 회사의 방향성과 진정성을 담은 구인공고를 발견하면 곧장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곳은 간혹 한번 나올까 말까이고, 막상 지원하려고 보면 대부분 3년 이상의 경력을 필수로 한다. 마치 나 같은 신입은 얼씬도 하지 말라는 듯이.


이 주 전 추석날이었다. 나는 늦은 아침 눈을 떠 휴대폰을 켰다. 습관적으로 취업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한결같이 ‘에디터’라고 검색했다. 그런데 웬 마케터 공고 함께 나왔다. 원래는 마케터 공고지만 에디터라는 해시태그를 함께 단 모양이었다.

‘[OO 책방] 공간, 서적 책방지기 모집’

공고를 클릭했다. 살펴보니 그곳은 회사라고 하기에도 조금 민망한, 성수동의 작은 서점이었다. 그 서점은 촬영 및 대관 사업도 함께 했는데, 서점의 브랜드 마케팅 및 대관 예약 담당자를 찾고 있었다. 공고를 자세히 보니 지원조건은 경력 무관이었고 담당업무는 서너 가지 정도 되었다. 업무에 관하여 조리 있게 설명해놓은걸 보니 내가 찾던 ‘친절한’ 공고 같았다. 적어도 ‘마케팅 업무’, ‘SNS 관리’ 같은 단어가 아닌 문장체였다.

공고를 요약해 보자면, 우리는 서점과 공간을 함께 운영하는 회사이니 당신은 우리 회사에 와서 첫째로 서적 입출고 관리, 둘째로 공유 오피스 및 스튜디오 예약 업무를, 셋째로 서점 콘텐츠 기획을 해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전 직장에서 호텔 예약 업무를 담당했었고, 책 읽기에도 이제 막 재미를 붙인 상태라 그 공고를 보고 마음이 동했다. 사실 다른 것을 다 떠나 내 마음이 동한 것은 공고 끝자락에 적힌 이 문장 때문이다.

‘저희에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도 마찬가지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자기소개서를 썼다. 쓰고 보니 다섯 시간이 지나있었다. 나는 다섯 번째 입사 지원을 했다.


만약 취업하게 된다면 서울에서 자취할 생각이었고, 그러면 자연스레 지금 다니고 있는 글방은 그만두게 될 것이다.

그간 취업도 취업이지만, 사실 글방에 다니며 매주 한 편의 에세이를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5기부터 시작한 글쓰기 수업은 이제 막 9기가 되어 일 년이 되었다.

여태껏 나는 석 달 단위로 재수강을 하는 것에 익숙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재수강이 망설여졌다. 또다시 머리를 쥐어짜고 매일 글을 쓸 생각을 하면 차라리 취업해서 어쩔 수 없이 글방을 그만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글쓰기는 누가 더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앉아있느냐에 싸움이에요.”

언젠가 글쓰기 선생님이 했던 말이었다. 나는 고작 1년 만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힘이 다 된 것일까. 글방을 그만두고 회사에 다닐 생각에 마음이 부풀었다.


합격자 발표는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날이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간 중간 휴대폰을 쳐다봤다. 그러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일을 하다 시간을 보니 합격자 발표 시간인 세시를 지나 다섯 시가 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님 앞에서 푹, 한숨을 쉬었다.

퇴근길에는 자전거를 타고 논길을 돌아 집에 갔다. 논길을 지나는 동안 규칙적으로 페달을 밟으며 노랗게 익어있는 벼를 쳐다봤다. 회사는 다시 구하면 되는 것이라고 명함을 파쇄기에 구겨 넣고 퇴사하던 날을 생각했다. 벌써 그 뒤로 두 번째 가을이었다.

그날 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노인과 바다’를 읽었다.

“하지만 운이란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운이 오늘 닥쳐올지도 모르며, 아무튼 매일 매일이 새날 아닌가 말이야. 재수가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기는 하지만, 그러나 나로서는 정확하게 하는 거다. 그래서 운이 돌아와 주면 나는 준비를 다 하고 기다리고 있는 셈이니까 말이야.”

종일 머릿속에서 비교, 평가, 탈락과 같은 단어들이 맴돌았었다. 그러나 이 책이 그런 단어들을 전부 내쫓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어느새 내 마음 속에는 이런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괜찮아. 너는 계속해서 글을 써.’

마침 그날 집어 든 책이 ‘노인과 바다’여서 다행이었다. 만약 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글을 쓰는 용기까지 잃어버렸지 않았을까.


일주일 전 글쓰기 수업 종강 파티가 있었다.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과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둘러앉았다. 우리는 모닥불을 쳐다보며 요즘 읽었던 책이나 시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중간 중간 가디건이나 두터운 겉옷의 옷깃을 여몄고, 이야기가 멈출 때마다 장작 타는 소리가 타닥타닥 들렸다.

나는 앞서 말한 ‘노인과 바다’의 한 문장을 읽었다. 그리고 묵묵히 글을 쓰는 생활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또 ‘노인과 바다’를 이야기했다. 알고 보니 글방에서 하는 지난 독서 모임에 ‘노인과 바다’ 책이 있었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마침 책의 여운이 남아있는 상태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아마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묵묵히 바다를 향해 나가는 노인처럼 묵묵히 글을 써야겠다는 나의 바람을 말이다.

밤이 짙어질수록 바람이 쌀쌀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여름 밤 두 팔을 벌리고 바람을 맞았던 것 같은데, 이젠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닥불 앞으로 발을 쪽 뻗었다. 옆 사람을 따라 모닥불 가까이 발을 뻗다가 문득 함께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책 ‘빅매직’에서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말한 ‘창조적인 삶’의 한 부분이 떠올랐다.

‘진짜 창조적인 삶이란 그저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 또 아무런 기대 없이 열린 마음으로 그 완성품을 나누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쓰고 또 그것을 나누다 보면 ‘창조하는 삶’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모닥불 가까이에 대고 있던 차가운 발바닥이 어느새 따듯해져 있었다.

나는 마른 장작을 하나 집어 들어 타들어 가고 있는 장작 위에 올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글방에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입사 지원에 탈락해서 아쉬웠다. 하지만 그때 ‘노인과 바다’라는 책을 읽었고, 글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건 정말 다행스럽다.

나는 이번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에게 어떤 ‘힘’을 느꼈다. 그리고 그 힘은 나를 이끌었다. 계속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도록 말이다.

나는 나를 이끄는 힘을 믿는다. 이제 나는 그 힘을 좇아가기만 하면 된다.

집에 돌아와 글쓰기 수업료를 이체했다. 작년과 같이 이번에도 글을 쓰는 가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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