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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춘한 Mar 06. 2024

권위와 정통성

권력과 권위는 어떻게 다를까. 권력이 개인의 능력에 국한된다면 권위는 다수에 의해 인정된 권리다. 통상 어떤 집단이나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는 권력을 지닌 사람을 우리는 권위자라고 부른다. 권위가 권력보다 상위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권위는 폭력의 행사나 위협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통치를 받아들이는 권력관계가 성립되며 제도화된다. 국가에서의 정치적 결정은 권위를 갖는 정책이 된다. 이는 사회 구성원들에 대해 구속력을 지니며 강제 집행된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권위를 전통적, 카리스마적, 합리적·법적 지배라는 세 가지로 분류했다. 전통적 권위는 관습에 기반하며 존경심을 기초에 깔려있다. 이 때문에 전통적 권위는 자연적 질서로 받아들여져 굳이 정당화할 필요가 없었다. 과거 군주제 체제에서는 왕과 영주에 의한 지배가 이뤄졌고, 이를 농노나 노예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전통적인 가정에서는 아버지나 연장자가 막강한 권위를 갖고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부장제가 일반적인 형태였다.      


카리스마적 권위는 지도자에 대한 추종을 기반으로 한다. 카리스마는 개인의 특별한 능력이라기보다 추종자들이 만든 일종의 영웅화를 의미한다. 대부분 국가나 집단이 위기적 상황을 맞이했을 때 나타하며, 전통적 권위에 비해 지속 기간은 매우 짧다. 대다수의 혁명 지도자나 독재자들과 함께 일시적으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흔하다. 예를 들어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 패전과 경제대공황에 따른 국가적 혼란을 수습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당시 독일의 경제 재건과 군비 확장을 꾀했고, 유럽 최강국으로 거듭나면서 추종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후 패전했고, 히틀러가 권총 자살하면서 카리스마적 권위는 막을 내렸다.      


법적·합리적 권위는 특정 개인이 아닌 규칙과 절차에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현대 민주주의에서의 법의 지배와 관료제가 있다. 정치인, 공무원, 판사 등의 권위는 법률에 기반하며 이들이 퇴임하면 자동적으로 사라진다. 이 같은 권위의 발달은 헌법, 선거 등 정치시스템의 발전으로 연결된다. 정부는 법적·합리성을 갖춘 형태로 고도화되며, 국민들은 권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종속된다. 대부분의 전통적, 카리스마적 권리는 법적·합리적 권위로 발전해 왔다.      


권위와 정통성은 비슷한 개념이지만 정통성의 범위가 더 넓다. 주로 권위가 정치인, 판사 등 개인적인 영역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면 정통성은 정부, 정권 차원의 영역에서 언급된다. 정통성은 사회 구성원들이 체제 또는 법을 정당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국가의 통치는 정통성이 존재해야만 국민들의 자발적인 복종이 이뤄진다. 이를 통해 정부의 권위가 세워지고, 안정적인 지배 체제가 성립될 수 있다.   

   

정통성은 현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단순히 합법성의 문제만은 아니다. 일부 정치체제나 법률의 경우 정당성은 결여됐지만 합법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제8대부터 11대까지의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는 일명 ‘체육관 선거’라고 말한다. 1972년 박정희 정부는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만들었다. 장충체육관에서 무기명 투표에 의한 대통령 선거가 이뤄졌고 득표율은 99%에 달했다. 법적인 부분만 따지고 들자면 절차적인 문제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뜻과 동떨어진 선거 방식은 결코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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