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는 검찰개혁을 위한 정면 돌파였다. 노 대통령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훼손된 원인은 권력과 수뇌부의 유착관계라고 봤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을 발탁하고, 파격적인 검찰 고위직 인사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사법고시 13~15회 검사장들이 배제되고, 16~17기가 승진하자 검사들의 반발이 확산됐다. 이른바 검사 특유의 기수문화와 의리가 작용했다. 검사들은 검찰총장에게 인사권을 이양할 것을 요구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젊은 평검사들과의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청와대 참모진들은 시기와 형식에 맞지 않다고 반대했지만 그의 생각을 꺾을 수는 없었다.
2003년 3월 9일 노 전 대통령은 평검사들과 정부서울청사에서 토론회를 열었고 방송 3사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참석 검사는 전국평검사회의에서 기수별·검찰청별로 뽑힌 40명이었고, 이중 10명이 토론자로 나섰다. 토론회 전 좌석 배치부터 신경전이 벌어졌다. 원래는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맨 앞에 앉고, 양옆에 검사들이 두 줄로 앉게 돼있었다. 그러자 검사들은 원탁으로 바꿔달라며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버텼다.
노 전 대통령은 젊은 검사들과 검찰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했다. 그는 “여러분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그야말로 소신껏 일할 수 있는 검찰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폭넓게 듣고자 한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제 착오나 과오가 있다면 흔쾌히 인정하고, 모자람이 있으면 그것은 받아가서 대통령으로서의 검찰행정에 참조하고 반영하겠다”라고 밝혔다.
검사들은 온통 인사에만 관심이 있었다. 허상구 검사는 “과거 정권교체기마다 개혁을 위한 인적청산이란 이름으로 매번 파격적 인사가 이뤄졌으나 오히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개혁을 위한 인적 청산을 내세워 과오가 증명되지 않은 검사를 퇴진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통령께서는 토론의 달인이고 저희들은 그야말로 아마추어들이다. 검사들을 토론을 통해 제압하시겠다면 이 토론은 좀 무의미하지 않겠나.”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 제가 잔재주나 갖고 여러분들하고 대화해서 제압하려는 인품의 사람으로 좀 비하하는 그런 뜻이 들어있다. 저는 상당히 모욕감을 느끼지만 토론에 지장 없이 서로 웃으며 넘어갑시다.”라고 맞받아쳤다.
검사들은 대통령 흠집 내기에만 열중했다. 김영종 검사는 “대통령에 취임하시기 전 부산 동부지청장에게 청탁전화를 한 적이 있다. 그것은 뇌물사건과 관련해서 잘 좀 처리해 달라는 이야기였는데 왜 검찰에 전화를 하셨나.”라고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제기를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죠. 청탁 전화 아니었다. 해운대 지구당에 당원이 사건이 계류돼 있는 모양인데 위원장이 억울하다고 자꾸 호소하니 얘기를 한번 들어주십시오. 그뿐이다. 그것이 청탁이라면 그렇죠. 나는 검찰을 신뢰했고 실제로 그 검사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맞섰다.
검사들은 토론 주제를 망각한 채 노 전 대통령을 비난했다. 이정만 검사는 “최근에 (대통령) 형님에 대한 해프닝을 포함해서 (이런 사건들이) 주위에서 또 생길 수가 있다”라고 했고, 노 전 대통령은 “이런 자리에서 (그 얘기를) 굳이 꺼내서 대통령 낯을 깎으려는 이유가 있을까요. 정말 이런 식으로 토론하시렵니까.”라고 날을 세웠다. 박경춘 검사는 “과거에 언론에서 대통령께서 83학번이라는 보도를 봤다. 혹시 기억하시느냐. 그 보도를 보고 내가 83학번인데 동기생이 대통령이 되셨구나 생각을 했다”라고 했고,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개인적 약점, 신문에 난 것을 거론하는 자리가 아니죠.”라고 지적했다.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는 노 전 대통령은 평검사들과 직접 소통에 나서면서 기존 대통령들과 다른 탈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이 높이 평가된다. 특히 검사들의 권위주의와 특권 의식이 토론을 통해 드러나면서 시민들이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조직의 민주적 통제를 위해서는 검경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검찰은 기소독점권을 갖고 있고,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무조건 반대를 했고, 검찰은 국회에 로비를 했다. 그렇게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의 첫발을 내디뎠지만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 우리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 확보라는 남겨진 과제를 마무리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