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에게 63일간의 업무 정지는 인내의 시간이었고, 대통령으로서의 언행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노 전 대통령은 평소 직설적이고 투박한 언어를 사용했다. 정치적 권위보다는 진솔함을 중시했던 탓인데 대통령에게 맞지 않는 화법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탄핵의 빌미를 준 것은 역시나 말이었다. 2004년 2월 18일 노 전 대통령은 경인지역 6개 언론사와의 합동 기자회견에서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같은 달 24일에는 방송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한 의원들이 만든 열린우리당은 47석의 소수여당이었다.
새천년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선거 중립의무를 위반했다고 총공세를 펼쳤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노 전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새천년민주당은 선거법 위반과 측근비리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지 않으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한나라당과 자유민주연합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노 전 대통령은 사과를 거부했고, 한나라당(108명)과 새천년민주당(51명)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자유민주연합은 대통령의 사과를 다시 한번 요구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거부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3월 11일 특별 기자회견을 열고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 둘째 형인 노건평 씨에게 3000만 원을 건넸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좋은 학교 나오고 크게 성공한 분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하는 일이 이제 없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남 사장은 몇 시간 뒤 한강에 투신했고, 자유민주연합은 탄핵 찬성으로 선회했다.
열린우리당은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 의장석을 점거했다. 3월 12일 새벽 3시 50분 야당이 기습했으나 여당의 항전으로 잠시 휴전 상황이 벌어졌다. 11시 4분 국회의장과 야당은 경호대를 동원해 20분도 안 돼 의장석을 탈환됐다. 새천년민주당·한나라당·자유민주연합 195명이 참석했고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가결됐다. 노 전 대통령의 직무 수행은 정지됐고, 고건 국무총리가 직무 권한 대행했다.
노 전 대통령은 탄핵소추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듣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정치적 판단과는 다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이 과정은 새로운 발전과 도약을 위한 진통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괴롭기만 한 소모적 진통은 아닐 것입니다. 몇 달 뒤 제가 여전히 대통령으로서 여러분께 드린 약속을 이행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힘이 들지만 저는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며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민심은 거대야당과 달랐다. 지상파 방송 3사의 여론조사에서 탄핵안 가결이 잘못됐다는 응답은 MBC 70.0%, KBS 69.6%, SBS 69.3%로 나타났다. 전국에서 탄핵 무효 촛불 집회가 대대적으로 개최됐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4월 15일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확보했다. 탄핵을 주도한 새천년민주당은 9석을 차지해 원내 4당으로 추락했다. 박관용 국회의장,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조순형 새천년민주당 대표는 정계에서 은퇴했다. 추미애 새천년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는 낙마했다.
헌법재판소는 5월 14일 노 전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일부 위반했으나 탄핵의 사유가 될 정도로 중대하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노 전 대통령은 업무 복귀에 즈음하면서 “대통령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우리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민주적 역량에 대해서 굳은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얼마나 걱정이 많으셨습니까. 모든 것이 저의 부족함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따뜻한 격려와 용기를 보내주시고 다시 책임을 맡겨주신 데 대해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취임할 때보다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비록 탄핵에 이르는 사유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정치적 도의적 책임까지 모두 벗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지지를 호소한 것은 강력한 집권여당과 권력욕 때문이 아니었다.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시대정신을 실현하고 싶은 소망이었다. 그래서 선거법 위반이라는 비판에 대해 끝까지 사과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은 정치적 궁지를 모면하기 위해 적당하게 타협하지 않았다. 그런 지도자에게 나라를 맡기면 대한민국에는 미래가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한겨울 추운 날씨 속에서도 생명을 잃지 않고 꽃을 피우는 인동초(忍冬草) 같은 사람이었다. 진보진영에서 제2・3의 인동초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