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행정수도 추진은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결단이었다. 행정수도는 청와대, 국회, 정부부처 등 주요 국가기관의 이전을 추진하는 것이다. 서울에 집중된 정치, 경제, 사회 등 기능을 분산하고 인구 밀집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였다.
노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당선되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해 청와대와 중앙부처를 옮기겠다.”라고 약속했다. 당시 민주당 내에서는 서울・경기에서 표를 잃을 수 있다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나라당은 수도권이 텅 비는 공동화(空洞化)를 초래한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정치적 손익을 떠나 국가의 미래가 달린 일이라고 생각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신행정수도 도시기본구상을 발표했다. 중앙행정기관을 모두 충청 지역으로 옮기고, 입법·사법·헌법기관은 국회의 동의를 거쳐 결정한다는 내용이었다. 2003년 12월 29일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은 찬성 167인, 반대 13인, 기권 14인으로 통과됐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올해 행정수도 입지가 정해질 충청권은 정치와 행정의 중심, 연구개발과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거듭날 것입니다. 바야흐로 중부권시대가 시작됩니다. 지방화시대의 비전과 전략이 구체화됨에 따라 수도권은 새로운 성장관리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우선 집값, 교통문제, 대기오염 등 과밀로 인한 고통과 고비용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서울은 국제금융과 비즈니스의 동북아 경제수도로, 경기도는 전자・IT산업이 주류를 이루는 첨단 경제거점으로, 인천은 동북아 물류와 외국인투자 중심도시로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는 충남 공주·연기지구를 최종 입지로 확정됐다. 하지만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확인 헌법소원에 대해 8 대 1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헌법에 명문규정은 없어도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은 관습헌법으로 인정되는 만큼 수도이전은 헌법 개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라고 판시했다. 그렇게 전대미문의 관습헌법 논리에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백지화됐다.
2004년 11월 18일 신행정수도후속대책위원회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로 후속대책을 마련했다. 여야는 주요 기관들은 모두 서울에 남기고, 나머지 12부 4처 2청을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에도 헌법소원이 제기됐으나 헌법재판소는 각하결정을 내렸다. 각하는 소송이 요건을 갖추지 못하거나 청구 내용이 판단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 재판을 끝내는 것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는 국민들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세종시로 결정됐다. 2005년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계획이 발표되고, 2007년 1월 혁신도시특별법이 만들어졌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9월 12일 제주 혁신도시 기공식에서 “참여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은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새로운 국토를 조성하기 위한 정책입니다. 전국에 펼쳐질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는 지역경제에 새로운 활력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에게 수준 높은 생활공간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균형발전 정책은 앞으로 위축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멈춰 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 더 심하면 되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수도권은 막강한 인구와 인재와 부를 갖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동안에는 균형발전정책의 진행을 막지는 못했습니다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이제 국민 여러분께서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이 정책을 꼭 지키겠다고 마음먹으면 지킬 수 있습니다. 이젠 지역만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혁신협의회가 아니라 균형발전을 추진하는 시민조직이 만들어져서 힘을 실어주어야 합니다.”라고 호소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세종시 건설을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원안 추진을 주장했고, 이완구 충남도지사는 강하게 반발하며 직을 내려놨다. 2010년 1월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를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교육 중심의 경제 도시로 바꾸는 수정안을 내놨다. 그해 6월 제5회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충청도에서 참패했고, 국회에서 세종시 수정안은 부결됐다. 결국 2012년 7월 1일 세종시는 17번째 광역자치단체로 출범했고, 9월 14일부터 중앙행정기관의 이전이 시작됐다.
현재 세종시는 반쪽짜리 행정수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 역시도 노 전 대통령이 철학과 뚝심이 없었다면 못 이뤄냈을 성과다. 사실 행정수도 이전은 1960년대부터 논의가 시작됐고,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충청권 행정수도 건설계획을 추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실익을 따졌고 번번이 무산됐다. 노 전 대통령은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봤다. 현재 마치 지방소멸은 이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늦었지만 지방분권이라는 과제를 완성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