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이 이르기를 나라는 멸할 수 있으나 역사는 멸할 수 없다고 했다. 대개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정신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박은식의 한국통사)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됐다.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없었고,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의 발판은 마련됐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보수 세력과 일본이 짜놓은 각본대로, 예상은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다. 이는 기시다 총리 본인의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 것으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 이 말을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을 갖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사과로 받아들일 수가 있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윤석열 대통령은 “진정성 있는 입장을 보여줘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고작 5년짜리 정부가 역사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외무상 시절 조선인은 강제 노동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해당 입장에 대한 변화된 태도를 보인 적이 없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를 하루빨리 매듭짓고, 미래 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모색한다고 한다. 국민들은 정부에 대한민국의 정신을 좌지우지할 권한을 위임한 바 없다.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는 일본의 완승이다. 그들은 그토록 원하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명분도 얻었다. 정부는 이달 23~24일 전문가 시찰단을 파견한다. 여기서 시찰은 공동 조사가 아니다. 도쿄전력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사실상의 견학을 뜻한다. 윤 대통령이 지금까지 공언해 온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검증이 될 수 있는가. 다음 달 원자력기구(IAEA) 최종보고서에서 ‘문제없음’이 나오면 오염수 방류를 반대할 명분은 완전히 사라진다.
국민과 국익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가만히 있으라. 외교에 있어 전략적 모호성은 최고의 전술이다. 이럴 거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나을 수 있다. 왜 대한민국이 미국·일본, 중국·러시아의 헤게모니 다툼에 선봉장이 되려고 하는가.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은 전면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