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관계의 그림자: 준비되지 않은 변화의 대가
한국 사회의 아웃소싱 산업은 1997년 외환위기 전후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97년 갑작스럽게 찾아온 외환 위기는 한국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30대 그룹 중 11곳이 해체되고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150만 명 이상의 실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1995년도 1인당 GDP가 처음으로 1만 달러 고지를 넘어 1996년도 1만 2197달러로 증가했으나, 외환위기 이후 1998년도에는 7455달러로 급격히 감소하는 등 1997년에 시작된 외환위기 사태는 우리 사회와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경제 위기" 하면 이때의 모습을 많이 떠올리며, 외환위기와 비교하여 현재의 경제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이야기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이 시기에 건국 이래 최대의 경제 위기를 겪게 됩니다. 또한, 국민들의 그동안 갖고 있었던 국가 경제에 대한 생각과 믿음을 완전히 바꿔 놓았는데, 예를 들어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도 사실 외환위기 이전의 시대에서나 통했던 말이 될 정도로 대한민국 경제 구조에 큰 영향을 주면서, 파견사원, 비정규직 사원(계약 사원), 연공서열의 파괴 등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생소한 고용형태와 직장문화가 생겨났습니다. 다행히 온 국민의 노력으로 한국 사회는 3년여 만에 수치적인 경제 위기는 극복했으나, 26년이 지난 현재까지 고용시장과 그 형태의 변화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정책과 대규모 경제 규모의 대기업들 중심으로 자체 생산 및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이를 다시 국가가 지원하여 이끌어 가는 경제모델이었습니다. 하지만 외환 위기 이후, 이러한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중소기업, 벤처기업 등이 경제 구조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물론 여전히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매출 및 자산 비중은 높지만, 이러한 변화는 중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시장 환경의 변화의 하나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국내 기업들은 성장 일변도의 경영 정책에서 생존과 나아가 시장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 및 운영 비용 절감과 경영 효율화 등을 위해 아웃소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아웃소싱 산업도 큰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외주, 파견, 하청, 도급, 파견사원, 계약 사원 등 외환위기 이전에 잘 들어보지 못한 용어들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게 되는데, 많은 기업들이 생산 프로세스와 서비스를 아웃소싱하는 현상이 늘어나게 되고 이는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한국 경제의 아웃소싱이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단지, 한국의 아웃소싱 산업의 발전은 다른 선진국들의 아웃소싱 산업의 발전 모델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유럽과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의 아웃소싱 산업은 산업혁명의 고도화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선택과 집중의 시장 논리, 즉, 수요와 공급의 흐름 속에서 성장을 하였다면, 한국의 아웃소싱 산업은 한국전쟁 이후 고도 경제성장을 이어 오다가 예상하지 못한 외환위기를 통해 급속하게, 달리 표현하면 사회 및 시장 전반적으로 준비되거나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반강제적으로 아웃소싱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으로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인위적인 현상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첫째, 대기업들이 아웃소싱을 처음부터 단순한 비용 절감 수단으로만 인식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리스크를 외부로 전가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웃소싱 기업들은 충분한 준비 시간 없이 시장에 진입하게 되어 전문성과 경쟁력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채 단순 인력 공급 업체의 역할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잘 표현해 주는 한국사회의 소위 "갑을 관계"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더욱 강한(?) 사회적 현상이 되는데 이는 대기업과 이들의 업무를 수행하는 중견 및 중소기업 등과의 적나라한 비대칭적인 관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대기업의 강력한 권한과 지위를 이용해 중견 및 중소기업 등이 수동적이고 위축된 관계에서 불합리한 계약 구조에서 업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이 원인은 한국의 아웃소싱 산업의 성장이 사회 전반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오로지 비용 절감만을 목표로 시작하여 그 효과를 대기업들 중심으로 향유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전후 한국경제를 성장시킨 경제모델은 가공무역이었습니다.
원자재를 외국에서 수입하여 낮은 인건비와 성실한 국민성에 기대어 적절한 품질에 저렴한 가격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생산하여 수출하며 국가의 경제 기반과 성장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2023년 기준 세계 수출 순위 7위로, 더 이상 다른 선진국의 경제를 모방하고 따르는 위치가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함께 주체적이고 선도적으로 방향을 제시하고, 스스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유지하며 이를 수행할 수 있는 글로벌 경제의 주체로서의 변모가 필요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의 디지털 전환 시대를 맞아 아웃소싱, 특히 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 산업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새로운 시대적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자신들의 핵심역량을 이해하고 핵심업무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단순히 비용 절감과 리스크 전가가 아닌, 전문 파트너와의 협력과 역할이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를 확보하지 못한 기업은 더욱 치열해지는 디지털 시장의 경쟁구도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중요합니다:
1. 디지털 전환 시대의 전문성 확보
-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대한 전문적 대응
- 클라우드, AI, 빅데이터 등 신기술 도입 및 활용
- 디지털 보안 및 리스크 관리
2.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파트너십 모델
- 공동 혁신 및 가치 창출
- 리스크와 성과의 공유
- 장기적 관점의 전략적 협력 관계 구축
창의적인 경제 모델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핵심 역량을 이해하고 핵심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적인 신뢰와 존중의 시장 협업 체제가 절실합니다.
아웃소싱의 근본적 의미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일정 조건을 전제로 타인에게 의뢰하는 것"입니다. 핵심사업이란 예를 들어 전쟁이 벌어지는 전장에서 적군과 대치하고 있는 맨 앞의 전투와 동일합니다. 군대가 전장의 전투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군대의 후방이 튼튼해야 합니다. 더욱이 현대전에서는 첨단 장비와 전문화된 후방 지원이 전투력의 핵심 요소가 되었듯이, 기업의 경쟁력도 전문화된 파트너와의 협력에 크게 좌우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군대의 후방은 믿을 수 있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부대와 부대장에게 맡겨져야 합니다. 기업이 핵심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지금까지 스스로 수행하던 업무를 아웃소싱 한다는 것은 바로 신뢰할 수 있는 기업에게 자신의 후방을 맡긴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자신의 후방을 맡기는 상대를 오로지 비용 절감이나 나의 부수적인 업무를 수행해 주는 편의적인 상대로 생각한다면 생사를 가르는 전투에서 안심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기업의 후방을 맡아 줄 수 있는 기업이 신뢰할 수 있고 동반성장할 수 있는 기업일 때 전투에서의 승리를 넘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환위기#IMF#대기업#파트너#후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