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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Apr 07. 2024

콘스탄티노플 함락에서 레판토 해전까지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하 - 시오노 나나미  ●●●●●●●◐○○


재건된 것은 배의 수 뿐이었다.
그 배를 활용할 능력을 가진 사람까지는 원래대로 돌려놓지 못했다.




   "국가의 안정과 영속은 군사적으로만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타국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거기에는 타국에 대한 의연한 태도도 큰 의미를 갖는다. 지난 몇 년 동안, 투르크인은 우리 베네치아가 결국 타협으로 도망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에 대한 우리 태도가 예의를 지킨다는 외교적 필요 이상으로 비굴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는 투르크의 약점을 지적하기를 삼가고, 베네치아의 우위를 명언하는 것을 게을리했다." 

                                                                                                                                   - p. 411. '레판토' 이후.




   .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하권은 1453년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계기로 중근동의 패권국이 된 투르크와 레콩키스타에 성공하며 새롭게 지중해 서쪽의 패권국으로 떠오른 스페인, 그리고 둘 사이에서 때로는 외교로, 때로는 군사적 움직임을 보이며 줄타기를 하는 베네치아 3국의 이야기를 다룬다. 상권의 마지막에서 베네치아와 제노바를 필두로 하는 이탈리아 해양국가들이 전성기를 맞이하고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면서 사라센 해적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력이 한풀 꺾인 것 같았던 것도 잠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본격적으로 발칸과 지중해로 힘을 투사하기 시작한 오스만 투르크가 이슬람 해양 세력과 손을 잡고 압도적인 물량과 적극적인 공세로 지중해를 휩쓴다. 


   .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해적에다 압도적인 투르크의 '양'에 북아프리카와 동지중해의 주요 요충지를 차례차례 내주고, 알제에서의 참담한 패배와 프레베자 해전에서의 무력한 철수에 이르기까지 한 세기 가까이를 밀리던 기독교 세력은 몰타 기사단이 투르크의 침공에 맞서 몰타를 방어해 내고, 레판토에서 스페인과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대승을 거두고 나서야 투르크의 확장을 저지해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긴 시간을 거친 끝에 지중해에는 드디어 균형과 평화가 찾아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평화가 찾아온 그 시점에서 지중해는 대서양을 비롯한 더 넓은 대양들에 역사의 무대 자리를 내주게 된다. 레판토 해전의 패배에 이를 갈며 해군의 재건을 공언하던 투르크는 배를 다시 만들 수는 있었지만 사람을 채울 수는 없었고, 때마침 동쪽에서 일어난 사파비 왕조와의 전쟁으로 인해 투르크 해군의 존재는 잊혀져갔다. 레판토에서 승리를 거둔 스페인의 '무적함대' 역시 17년만에 드레이크가 이끄는 영국 해군에게 완패를 당한다. 그렇게 로마인 이야기 이후 천년에 걸친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지중해 세계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투르크도 해군 국가는 아니라는 사실이 레판토에서 실증되었지만, 에스파냐도 그것을 곧 실증하게 된다. 유명한 에스파냐의 무적함대가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의 영국 해군과 격돌하여 완패한 것은 1588년, 레판토 해전이 일어난 지 겨우 17년 뒤의 일이었다. 투르크 함대도 해전을 벌이지 않는 동안에만 '오스만 제국의 위대한 해군'이었듯이,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도 베네치아의 참가 없이 그들끼리만 싸운다면, 해전을 벌이지 않는 동안에만 무적이었을 것이다. 

                                                                                                                                    - p. 412. '레판토' 이후




   .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젊었을 때 쓴 '바다의 도시 이야기'와 중복되는데, 그때만 해도 아직 '젊었던' 여사가 주인공인 베네치아 측의 시각에 일방적으로 경도되어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한결 더 성숙한 시각으로 지중해 세계의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는 "무능한 용병대장 1"이었던 안드레아 도리아의 활약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킨 것도 그렇고(이렇게 멋진 노장이었다니!) 레판토 해전 이후 금세 복구된 것 같았던 투르크 함대였지만 알고 보면 겉만 멀쩡했을 뿐 실제로 레판토에서 잃은 인적 자원의 손실은 도저히 복구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로 인해 스페인이 전장에서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와 평화조약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는 부분도 훌륭했다. 평생을 지중해 세계에 몰두한 여사의 성취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레판토 해전'에서 치른 희생은 허사였던가. 허사는 아니었다. 투르크의 술탄은 도망쳐 돌아온 울루치 알리를 이번에는 정식으로 투르크 해군 총사령관에 임명하여 투르크 해군의 재건을 맡겼다. 울루치 알리도 콘스탄티노플 주재 베네치아 대사가 경탄했을만큼 재빨리 그 임무를 완수했다. 하지만 재건된 것은 배의 수 뿐이었다. 그 배를 활용할 능력을 가진 사람까지는 원래대로 돌려놓지 못했다. '오스만 제국의 위대한 해군'이라고 불린 투르크 함대는 레판토 해전 직전에 출현하여 레판토 해전과 함께 사라졌다. 

                                                                                                                                    - p. 410. '레판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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