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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Mar 30. 2024

왜 시오노 나나미는 베네치아를 알맹이라 했는가

바다의 도시 이야기 - 시오노 나나미(한길사)  ●●●●●●●◐○○


베네치아의 운하는 배를 통과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물을 통과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주의는 인간의 이성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성에 의해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항상 소수인 까닭에 대중을 동원하는 데는 그다지 적당한 주의라고는 할 수 없다. 마키아벨리의 말에 이런 것이 있다. 

   "어떤 사업이 성공하느냐 못하느냐는, 첫째로 사람들을 그 사업으로 몰아넣는 무엇인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다시 말해서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드리아 해를 '베네치아의 만'으로 만들어두기 위해서 베네치아인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스스로 선두에 서서 희생을 감수하는 엘리트 계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베네치아는 공화국이다. 민중의 지지가 없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 민중은 눈앞의 필요성이 없는 한, 감성에 호소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법이다. 12세기에 공식으로 제정된 베네치아의 축제 '바다와의 결혼식'은 국민의 축제로서 해마다 되풀이함으로써 그런 효과를 노렸으며 또한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 상권, p. 79. 바다로!




   . 그리스인 이야기와 로마인 이야기, 십자군 이야기에 이어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또 다른 이야기 시리즈를 읽는다. 로마의 멸망 이후 유럽은 대내적으로는 온통 종교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대외적으로는 이슬람의 침략에 시달리는 암울한 중세에 접어들었지만, 그 한구석에는 중세의 시작점에 건국되었음에도 철저한 현실주의에 입각해 근대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1천년을 버텨낸 베네치아가 있었다. 


   . 베네치아의 흥망성쇠 중 시작과 융성을 다루는 상권에서 베네치아는 정말 그 시대에 이런 나라가 있었을까,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미화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간 게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이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온 이탈리아가 랑고바르디 족을 필두로 남하하는 이민족의 지배 하에 들어가는 상황에서도 동로마 휘하의 자치공화국이라는 기치를 유지하면서 기존의 로마제국이 가지고 있었던 체제와 문화, '로마인'의 인적구성을 상당 부분 보존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신기한 일인데,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여기서 더 나아가 유력가문이 연합하는 체제를 성립시킴으로써 군주제나 독재정, 심각한 계파의 갈등 없이 누가 당선되든 국가의 방향이 유지되는 체제를 만들었다는 것을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런 베네치아의 체제는 '합리'와 '안정'이라는 중세 내내 베네치아가 가졌던 가장 큰 장점으로 이어지고, 국력을 한데 모아 숙적인 제네바를 꺾고 수백년 동안 동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고 오스만 투르크와 맞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 그래서 시오노 나나미는 왜 피렌체가 아닌 베네치아 공화국의 역사를 쓰느냐는 질문에, "내가 쓰려는 것은 르네상스 문명의 알맹이 쪽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도발적이긴 하지만, 르네상스의 본질을 인본주의로 보는 입장 하에서라면 납득하지 못할 대답은 아니다. 신이 우선이었던 중세 내내 인간과 합리성을 앞세워 국가를 운영해갔던 거의 유일한 국가가 베네치아이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났다. 칸디아는 아직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크레타 공방전이 10년이나 계속되고 있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베네치아에 대한 찬탄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오래 계속되던 스페인과 프랑스의 전쟁도 끝나서 이 두 카톨릭 국가는 동지중해에서 이슬람과 상대하여 싸우고 있는 베네치아에 주목할 여유가 비로소 생기게 되었다. 15세기까지 베네치아는 각국의 시기와 증오의 대상이었고 16세기에는 또 대국 사이에 끼여 애를 먹으며 굴욕 외교를 한다고 경멸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경제대국이었지만, 완전히 쇠퇴기에 든 17세기에 들어 비로소 베네치아가 각국의 찬양과 감탄을 받게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 하권, p. 348. 지중해 최후의 성채




   . 그런 베네치아가 스페인, 프랑스, 오스만 투르크 등 그들이 가진 규모의 힘을 활용하는 법을 깨닫기 시작한 '양형국가들'을 상대로 그들이 가진 합리성으로 맞서야 하는 고군분투를 그려내는 하권에 이르면 여사의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아무래도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에 비해 이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여사가 훨씬 젊었을 때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로마인 이야기보다도 이 책이 먼저다), 대상에 대한 열정과 '사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말까지 이어지는 전쟁의 시기를 다루는 '2대 제국의 골짜기에서'와 '지중해 최후의 성채'에서는, 피끓는 열정을 가지고 불같이 이야기를 쏟아내는 젊은 시오노 나나미의 글을 접할 수 있기도 하고. :) 


   . 이렇게 그리스인 이야기부터 로마, 십자군, 로마 이후, 그리고 베네치아로 이어졌던 시오노 나나미의 지중해 시리즈는 이렇게 끝나긴 하지만, 아직 다행히 르네상스 시리즈도, 황제 프리드리히 2세 이야기도 남아있으니만큼, 한동안 시오노 나나미 여사 읽기는 계속될 예정이다. ^^




   영고성쇠가 역사의 순리라면 하다못해 이 베네치아처럼 우아하게 쇠할 수는 없을까? 그리고 베네치아가 그같이 우아하게 쇠할 수 있었던 것은 베네치아의 죽음이 병고와 시련을 여러 차례 극복해 온 끝에 자연사를 맞는 인간의 죽음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 하권, p. 407. 비발디의 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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