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혼자가 아닌, 모두가 쌓아나간 발전의 이야기

이노베이터 - 월터 아이작슨(오픈하우스) ●●●●●●●●◐○

by 눈시울




컴퓨터의 탄생에서 끌어낼 주요한 교훈은 혁신이 대개 선지자와 엔지니어의 협업이 포함된 집단적 노력이고, 창조성은 많은 출처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발명의 아이디어가 번개처럼 떠오르고, 지하실이나 다락방이나 차고에서 일하는 외로운 개인의 머리에서 전구처럼 튀어나오는 것은 아이들의 이야기책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 p. 128.





.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주석'으로부터 시작해서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의 '구글'로 끝나는 690쪽의 이 방대한 이야기는 단순히 시대별로 나타났다가 사라진 여러 천재들을 차례로 소개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발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현실적인 노력과 그 결과물들이 공유되면서 진보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래서 월터 아이작슨은 책의 첫 장부터 '천재의 발상'이 아닌, '협업적 창조성'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하고, 첫 컴퓨터 제작과 관련해 서는 천재 아타나소프 vs 모클리-에커트&미 육군이라는 대조를 통해 협업과 집단적 노력에 힘을 실어준다.

아타나소프와 모클리-에커트는 그동안 쌓아진 기술발전을 통해 비슷한 시기에 컴퓨터를 착안해냈고 아타나소프의 연구가 모클리-에커트에게 일종의 착안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결국 대학 지하실에서 동료가 단 하나뿐이었던 아타나소프의 컴퓨터는 결국 기술적인 오류를 해결하지 못한 채 실행되지 못했다. 그에 비해 모클리-에커트 팀은 육군의 지원과 각각 발상 & 엔지니어를 담당한 모클리와 에커트, 그리고 더 많은 팀원들과 함께 한 결과 최초의 컴퓨터 ENIAC의 개발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비록 후에 특허 공방을 통해 아타나소프가 ENIAC에 발상을 제공한 부분 역시 인정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ENIAC의 개발자에 아타나소프의 이름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챕터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월터 아이작슨은 덧붙인다.





- 결국 아이디어란 한 개인에 의한 독창적인 생각보다 그룹에서의 반복적인 상호작용으로 인해 형성되는 것이 더 큰 것이다. 어디선가 뚝 떨어지는 한 줄기 번개보다는 아이디어 간의 상호 마찰을 통해 불꽃이 이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중략) 폰 노이만이 지닌 위대한 강점은 바로 질문을 던지고 경청하고 부드럽게 대안을 제시하고 의견을 수집하면서 창의적인 협업 과정의 감독 역할을 수행할 줄 아는 재능이었다.

- p.161.



. 첫 컴퓨터가 그랬듯, 그 이후의 발전 - 트랜지스터나, 마이크로칩이나, 인터넷 등의 오늘날로 이어지는 발전들은 개별적인 창조의 이야기들이 아니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 이어져오면서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한 방향을 잡고 이어진 결과가 다음 발견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 여러 발견들 중 약간 더 커다란 기점이 되는 것들에 언론과 이슈가 끼얹어지면서 마치 '전례없는 위대한 창조'인 마냥 얘기될 뿐이지만, 그건 사실과는 다르다. 우리의 단견에서 '지금'이 강조되어 보이는 것일 뿐, 그 '지금'의 앞과 뒤에도 계속 시간이 흘러오고 흘러가는 온 것을 생각한다면 위대한 영웅 하나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이야기 같은 건 호들갑일 뿐일지도 모른다. 몇천년 단위의 역사 속에서도 그러한데, 하물며 아직 백년도 채우지 못한 컴퓨터 기술의 발전은 더 그렇지 않은지. 그래서 작가는 이런 '발견'과 '창조'에 대해 인터넷의 개발자 중 하나였던 폴 베어런의 입을 빌려 이렇게 얘기한다.




- 테크놀로지 발전 과정은 성당을 짓는 것과 같다. 수백 년에 걸쳐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나 오랜 기초 위에 벽돌을 하나씩 쌓는데, 이 모두가 "내가 성당을 지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음 달이면 이전 벽돌 위에 새로운 벽돌이 올라간다. 그러다 역사가가 나타나 묻는다. "자, 누가 성당을 지었는가?" 피터가 여기에 돌 몇 개를 보탰고, 폴이 몇 개를 더 얹었다. 조심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속여 자신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각각의 기여는 그 전의 작업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모든 것이 다른 것과 연결되어 있다.

- p.369.



. 또한 이 책은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발견 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참여에 의한 발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처음 무한대에 가까운 공간이 만들어졌을 때 그 공간은 몇몇 온라인서비스 이외엔 대부분 황량한 공터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온라인 공간은 수많은 개인 사이트와 위키피디아로 인해 무서운 속도로 채워졌고 또한 증식해갔다. 개인 사이트들의 연계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이어졌고, 위키피디아는 자발적인 참여자들간의 논쟁과 협력을 통해 브리태니커 같은 백과사전 공룡들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수많은 지식들이 무료로 공개되었으며, 보통사람들도 단순히 제공된 정보를 이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런 통로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그 정보의 생산자가 되었다. 위키피디아를 통해 알려진 엠스워스 경이라는 영국 귀족 전문가는 열 여섯의 소년이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역사 분야에서 몇년에 걸쳐 오랜 기간 동안 활동하며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름만 대면 다 알법한 모 유저는 아직 서른 살도 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준 바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역사상 전례없는 방식으로 지식을 창조하고 퍼뜨리는 일원'이 되었다. 컴퓨터의 역사 시작점에서 에이다 러브레이스가 얘기한 '생각하는 것만 빼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기계'의 조건은 하나 더 충족되게 된 것이다.


. 이 글이 쓰여진 시점 이후 알파고는 보드게임 중 가장 인공지능화가 어렵다는 바둑에서 이세돌에게 4:1로 승리했으며, 이후 더 진보된 알파고의 인공지능은 다른 프로기사들을 상대로 몇십연승을 거두며 이젠 더 이상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는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다른 쪽에선 아마존이 자동화 시스템을 소매점에까지 도입시켜 점원 없는 가게를 실현시켜 기술의 발전으로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코앞까지 온 것 같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SF 영화나 소설을 떠올려 지구의 종말이 온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하더라도, 결국 알파고든 무인시스템이든 몇십년을 거쳐온 기술의 발전과정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기나긴 발전과정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살아왔다. 그 기간 동안에 계산기와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을 앞지르고 공장의 자동화로 현장직이 줄어들었다한들, 언제든 인간은 줄어들고 뒤처진 것보다 더 많은 일을 벌여왔고, 거기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학교에서 주판과 교련 대신 컴퓨터와 인터넷과 노동법을 배웠던 것처럼, 또 다른 시대에 맞는 지금과는 다른 배움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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