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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May 16. 2024

도시괴담 특집

미스테리아 24호 - 엘릭시르



   질문하신 것처럼 가깝기 때문에 더 용서할 수 없고 친하기 때문에 더 미워하는 관계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 중 하나를 꼽는다면, 나와 닮았기 때문에 더 화가 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엄마에 대해 느끼는 기분에는, '나는 절대 이렇게 되지 않을 거야'라고 단언하기 힘들고 언젠가 나도 반드시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존재합니다. 엄마가 된 내가 아이에게 과거의 나와 닮은 부분을 발견할 때 '이대론 안 돼!' 라고 화를 냈다면, 그건 과거의 나에 대해 화를 내는 측면도 있지 않나 싶어요. 상대방에게서 나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옛날에 저질렀던 과오라든가 언젠가 저지를지 모르는 과오를 쳐내지 못하고 갈등을 빚게 되는 것 같습니다. 

                                                            - p. 108. '당신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결말', 소설가 미나토 가나에 인터뷰




   - 역대 최고 데뷔작의 작가, 이야미스의 대표주자 '미나토 가나에 인터뷰'

       . '왕복서간'부터 '여자들의 등산일기', 그리고 다시 읽는 '고백' 


   - 도시괴담 특집 

       .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빨간 마후라'와 'M'

       . 아미동의 일본귀신에서부터 군대와 낙태에 이르는 역사적인 괴담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새로운 도시전설에 이르기까지 - 음료수 한 잔 마시고 눈뜨고 일어났더니 욕조 속이었어요

       . 미스테리물 속의 도시전설들 - '허구추리 - 강철인간 나나세', '도시전설 세피아', '소문' 등 


   - 리뷰들(책과 영화)

       . 오테사 모시페그, '아일린' - '나는 이러저러한 사람이다'가 아닌, '당신은 나를 이러저러한 사람으로 볼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한 인간의 분열과 광기 


   - 헤닝 만켈의 '발란데르의 첫 번째 사건' 1부 외 두 편의 단편 




   .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는 참 겁이 많았고, 그 대상은 하나같이 귀신이었다. 학급의 문고마다 꼭 몇 권씩은 꽂혀 있었던 귀신이야기를 읽으면 그 이야기의 글자 하나하나가 어둠 속에서 떠오를 정도였고, 그 때 봤던 삽화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그리고 그 삽화들을 떠올렸더니 어쩔 수 없이, 불가항력으로 머리가 쭈뼛해진다). 특히 당시에 내가 살던 막 완공된 복도식 아파트는 이상하게도 층과 층 사이의 계단에는 항상 불이 꺼져 있었고, 가끔 짝수층 엘리베이터가 고장나기라도 하는 날에는(그리고 왜 그렇게 고장이 잦던지) 19층에서 내려서 암흑 속에서 20층으로 걸어올라가야 했는데, 그 짧은 한 층을 올라가는 게 내게 있어선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 그 시절에(이걸 말하면 나이가 어느정도 드러나겠지만^^;) 빨간 마후라가 있었고, 그보다 조금 이전에 M이 있었다. 지금와서 보면 '링'이나 '주온'처럼 놀라서 죽을 때까지 무섭게 만들어주겠다는 공포물은 아니었지만, 아직 어렸던 내겐 그렇게 이뻤던 심은하가 초록눈을 하고 괴상한 목소리를 하며 피를 흘리고 있었던 것만으로도 총분하고도 남았다. 그렇게 방학이 끝날 때마다 돌아간 교실은 온통 괴담으로 가득 차 있었다. M에다, 빨간 마후라를 만났을 때 대답하는 방법에다, 막 돌려읽기 시작한 퇴마록까지. 


   . 이번 미스테리아 24호는 여름에 어울리는 납량특집으로 도시괴담을 다룬다. 물론 미스테리아인 만큼, 읽다가 놀라서 죽으라는(^^;) 귀신이야기가 가득 담긴 얘기는 아니다. 억압된 식민지 조선인들의 이야기가 변형되어 나온 '동팔호실'의 이야기와 그런 괴담 뒤에 '불온'한 이야기들을 숨겨서 전파하던 탑골공원이라는 장소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 일본이 물러간 뒤에도 여전히 괴담의 형식으로 남겨진 부산 아미동의 공동묘지 이야기, 그리고 어린 시절의 빨간 마후라와 M, 현대의 괴담들에 이르기까지. 


   . 이런 괴담 속의 귀신들은 일반적으로 증오와 분노와 슬픔, 그리고 무엇보다 억울함을 품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귀신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원'과 '한'을 함께 이야기하고, 그게 성불의 형태든 복수의 형태든 원과 한을 풀어야 귀신이 사라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귀신과 귀신이 나오는 괴담은 현실에서는 도저히 해소할 수 없는 억압되고 짓눌린 이들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는 유독 군대와 낙태에 관련된 귀신 이야기가 많은 것일테고. 




   고된 훈련 때문에 목매달아 자살한 훈련병의 죽음 또한 그 자체로 공포의 대상일 뿐, 애도도 문제의식도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이 그 귀신처럼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기보다는 귀신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군대 기담은 효율적인 통솔기제로 작용하면서 개인을 통제하고, 체제 내의 부조리와 불만을 은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군대 괴담의 귀신은 복수의 대상을 찾지 못한 채 이승을 떠돌면서 끝없는 공포를 자아낸다. 그러한 공포를 기반으로 한 군대 괴담이 병영 안팎에서 오락으로 소비되면서, 역사는 외면당하고 진실은 매몰되며 이념은 소거된다. 

                                                                                   - p. 65. 군대, 귀신, 불고기, 그리고 '아닙니다' - 진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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