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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Apr 21. 2024

묵직. 우직. 정직.

철로 된 강물처럼 - 윌리엄 켄트 크루거(RHK)  ●●●●●●●○○○


"이제 우리 어쩌지, 형?"
"그냥 평소처럼 계속 살아가야지.
평소처럼 행동하면서 살다보면
언젠가는 다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가 있을거야."



   "영화를 보면 존 웨인이나 오디 머피가 사람을 아주 쉽게 죽이는 거 같고. 하지만 실제로는 네가 누구를 죽인다면, 그가 네 적이든 아니든, 너를 죽이려고 했든 안 했든 상관없이,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평생동안 너를 괴롭힐거다. 네 뇌리 속에 너무 깊이 박혀서 하나님의 손조차도 그걸 끄집어내 던져버릴 수가 없지. 네가 아무리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도 말이야. 그리고 몇 년 동안은 그 느낌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불행과 공포를 가져다 줄 거야. 그리고 그 끔찍한 무감각과 절망감이 네게 총을 겨누는 사람만큼이나 무서운 너의 적이 되는 거지." 

                                                                                                                                                          - p. 152.




   . 선로에서 기차에 치인 한 소년의 사고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이렇게 소개를 시작하고 나니 추리소설에서는 참 흔하디 흔한 도입부긴 하지만, 그 사고가 정말 뭐 하나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진짜 사고일 뿐이었다는 게 이 소설의 다른 점이다. 그저 그 해 여름에 한 마을에서 일어난 여러 비극의 하나였다는 것, 그리고 그 비극을 통해 어린 두 소년이 죽음에 대해, 후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빼고는 작가는 수수께끼는커녕 어떤 군더더기조차 붙이지 않는다. 계곡에서 자는 것처럼 죽은 한 남자와 평화롭게 '자기식으로' 그를 추모하는 그의 지인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초반 내내 이야기는 그들에게 아직 낯설었던 죽음과 시간에 대해 깨닫게 되는 소년들의 모습을 그려내며, 그 과정에서 소년들은 조금씩 성장해간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모습의 죽음이 찾아온다. 그리고 이야기는 갑자기 초점을 확 끌어당겨 소년과 소년의 가족들을 세세하게 비추고, 사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어간다. 




   상실이 확실해지면 그것은 손에 쥔 돌멩이와 같다. 무게가 있고 크기가 있고 질감이 있다. 단단하고, 평가와 처리가 가능하다. 그것을 들어 자신을 칠 수도 있고 그냥 던져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에어리얼 누나의 실종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상실과는 많이 달랐다. 그 불확실함이 우리를 감쌌고 우리에게 들러붙었다. 그 불확실함을 들이쉬고 내쉬었지만 그것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 p. 268.




   .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이 소설을 추리소설로 읽기엔 좀 부족한 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 아이들의 눈과 입을 빌려 이뤄지는 추적은 단조롭고, 몇몇 미스디렉션이 있긴 하지만 초반에 깔아둔 복선이 그 아래에 빨간 강조선을 몇 겹으로 그어놓은 것처럼 뚜렷한 덕에 그 미스디렉션에 넘어갈 독자는 거의 없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대로라면 진상이 너무 뻔한 게 아닌가 싶어 혼자 고민하다가 걸려넘어질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진중함이 그런 게 딱히 중요하냐고 되묻는데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요새도 이런 책이 남아있었나 싶을 정도로 숨기거나 꾸미지 않은 채 원형 그대로의 메시지를 던져대는데, 그걸 받아내기가 쉽지 않다. 


   . 삶의 몇몇 지점에서,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일과 마주하고는 한다. 그것은 선택이기도 하고 상실이기도 하고, 또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채 회피한 댓가를 치루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일들과 마주쳤을 때 우리는 그런 일이 없었던 듯 타인을 - 그리고 자신마저 속인 체 살아가기도 하고, 되돌릴 수 없는 채로 삶은 계속 흘러간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한 채 그것을 부정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혹은 급하게 어딘가에서 답 비스무레한 것을 복붙해와서 그걸로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믿어버리기도 한다. 그런 기만과 분노와 외면을 딛고, 윌리엄 켄트 크루거는 너무나도 뻔해보이고 그저 당연해보이는 메시지를 읽는 이들에게 전달한다. 그런데 그 요령없는 우직함 앞에 범인이 누구고 진상이 무엇이냐는 물음이 그저 덧없게만 느껴지는 게 이 책이 가진 힘이다.



   가장 어두운 밤이라도 믿음을 부여잡고 있을 힘이 아직 우리에게 있습니다. 아직도 소망을 품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라도 사람들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굳건히 지킬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통제권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 가지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절대로 다시 빼앗아가지 않으십니다. 이 선물을 버리는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여러분의 어두운 밤에, 부디 믿음을 붙잡으십시오. 소망을 품으시고, 사랑을 불타는 양초처럼 여러분 앞에 들고 계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여러분의 길을 밝혀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기적을 믿든 믿지 않든, 장담컨대 여러분은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기도로 간구했던 기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루어진 일을 되돌리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새로운 하루의 아름다움을 다시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실 기적입니다. 

                                                                                                                                                          - p.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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