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외국어 - 무라카미 하루키(문학사상사) ●●●●●●●●●○
나는 학생 때 뭔가를 쓰고 싶었지만, '무엇을' 쓰면 좋을지 몰랐던 거야.
"그런 게 아니라 그것은 계기에 불과했지. 태양의 빛이라든지 맥주 맛, 2루타 공이 날아가는 모양, 그런 여러 가지 요소가 딱 맞아 떨어져 내 안에 있는 뭔가를 자극했겠지. 말하자면 내게 필요했던 것은 자기라는 실체를 확립하기 위한 시간과 경험이었던 거야. 그것은 뭐 특별하고 유별난 경험일 필요는 없어. 그저 아주 평범한 경험이어도 상관없지. 그 대신 자기 몸에 충분히 배어 드는 경험이어야만 해. 나는 학생 때 뭔가를 쓰고 싶었지만, '무엇을' 쓰면 좋을지 몰랐던 거야. 무엇을 써야 하는지를 발견하기 위해서, 나에게는 7년이라는 세월과 고된 일이 필요했던 거겠지. 아마도."
- p. 210. 롤 캐비지를 멀리 떠나보내고
. 앞선 '먼 북소리'에서 써낸 삼년간의 유럽체류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온 지 일년도 채 되지 않아, 하루키는 다시 한 번 일본을 떠난다. 이번에는 미국이었다. 프린스턴 대학의 초청을 받고 그곳에 머물게 된 하루키의 미국 생활은 4년이나 계속되었다. 미국에서 하루키는 강의를 하면서 중편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과 대작 '태엽감는 새'를 쓴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짬짬이 써낸 미국 생활기가 바로 이 '슬픈 외국어'다.
. 먼 북소리가 외국 '여행기'라면 슬픈 외국어는 외국 '생활기'라는 차이가 있다. 먼 북소리에서 하루키는 장기간 유럽에 체류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행자로서의 체류였다. 반겔리스와의 짧은 우정을 제외하고는 어디까지나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간관계만을 맺으면서, 몇 달, 혹은 몇 주마다 체류지를 바꾼다. 뉴스도 신문도 보지 않은 채 거리를 바라보고 조깅을 하고 글을 쓸 뿐이다.
. 슬픈 외국어에서는 다르다. 거리를 바라보고 조깅을 하고 글을 쓰는 건 여전하지만, 대학의 교환교수로 학생들에게 일본 문학을 가르치고, 자신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교수이자 작가로서 프린스턴의 대학 관계자들을 시작으로 이런 저런 사람들을(그 와중에 무려 폴 오스터를 만나기도 한다!!) 만나며 지역사회에 녹아든다. 신문은 무려 두 종류나 읽는다. 세상에. 그 하루키가. 신문을 읽다니!!
내 생각에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개념'이라는 것이 일단 확립되면, 그것이 점점 커지고 강해져서 이상주의적(and/or), 배타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흔히 "자연이 예술을 모방한다"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인간이 개념을 모방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이 개념을 예-아니오, 예-아니오로 답하며 열의를 가지고 진지하게 끝까지 추구해가면, 예를 들어 동물 애호를 부르짖는 사람이 고기공장을 습격해 영업을 방해하거나, 낙태 반대론자가 낙태 수술을 하는 의사를 총으로 쏘거나 하는,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일이 일어난다. 본인이야 지극히 진지하다고 하겠지만.
- p. 158. 미국의 건강한 여성들, 그리고 내 아내
. 거기다 마침 그 때는 걸프전과 독일 통일과 소련 붕괴의 시기였고, 일본의 버블 경제가 꺼지기 직전의 시기이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겉으로는 걸프전에서 완승을 거두고 냉전에서도 승리를 거두며 한껏 고양되어 있던 미국 사회였지만, 한편으로는 자동차를 비롯해 잠식해 들어오는 일본 산업에 속수무책이기도 했다. 더구나 자본주의가 급격하게 가속화되고, 그와 동시에 그전까지 사회의 불만을 상당 부분 억누르던 냉전이라는 도구가 사라지자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한다. 그가 있는 곳은 '아직까지는' 학구적이고 상아탑이라고 부를 법한 비세속적인 프린스턴이었지만, 그곳 역시 그러한 변화를 피해갈 수는 없다. 많든 적든, 빠르든 느리든의 문제일 뿐이다. 하루키의 눈이 이를 놓칠리 없다.
"손님은 피아니스트인 배리 해리슨은 아세요?"
"알아요. 괜찮은 피아니스트죠."
"그 사람도 내 친구죠. 그가 그러더라구요. 일본에 가면 왕처럼 대접받는다고요. 길을 걷고 있으면 다들 다가와서 사인해 달라고 한다나요. 정말 깜짝 놀랐다고 해요. 놀랍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했다더군요. 그럴 수밖에 없죠. 배리가 뉴욕 거리를 걷고 있어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으니까요. 그저 혼내거나 괴롭힐 뿐이거든요. 정말이지 이 나라에서 우리 모두는 개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구요."
- p. 126. 프린스턴 대학과 UC 버클리가 상징하는 것
. 그래서 이 에세이는 그동안 나왔던 하루키의 에세이와는 정반대로 길고, 폭넓으며, 그러면서도 깊다. 눈앞에서 마주하는 일본 경제에 대한 미국의 적대감과 위기감을 직접적으로 고발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사람들의 - 국가와 체제의 승리 뒤에서 소외된 소수자들과 흔들리는 중산층들의 - 불안감을 이야기한다. 점점 커지고 강력해져 가는 '개념'들이 이상만을 좇으며 배타적으로 변모해 인간을 옥죄기 시작하는 모습에 대해 '인간이 개념을 모방한다'고 말하는 부분은 PC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의 우리 사회와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수다스럽고 재즈를 좋아하는 한 택시 운전사와 재즈 뮤지션들에 대해 차 안에서 나눈 대화는 미국 사회가 결국 극복하지 못한 채 BLM으로 터져나온 인종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스티븐 킹과 그의 작품을 끝도 없이 물고 늘어지며 고소와 인터뷰를 일삼고 자택을 침입하는 '좀 이상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엄연한 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하루키는 그렇게 이 에세이를 통해 미국의 - 그리고 곧 일본과 우리의 이야기가 될 어둠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프린스턴 경찰에 따르면 앤 힐트너는 킹뿐만 아니라 조이스 캐롤 오츠와 노먼 메일러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1989년에서 1990년에 걸쳐 몇 번인가 이 세 명의 작가가 공모해서 자신의 집에 침입한 후, 그녀가 쓴 원고를 훔쳐갔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 이야기에 오츠와 메일러가 등장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사람이 함께 빈집을 터는 광경을 상상하면 왠지 소름이 끼친다. 볼 수만 있다면 나도 한 번 꼭 보고 싶기도 하다. (중략)
"앤 힐트너도 에릭 킨도 단지 세상의 주목을 끌고 싶어한 것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음으로써,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거죠. 그렇게 약간 빗나간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나나 혹은 스티븐 스필버그나, 조이스 캐롤 오츠 같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피뢰침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 p. 95. 부강한 나라의 불안한 그늘
. 하지만 그런 사회적인 부분만을 가지고 이 책을 이야기하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다. 하루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마라톤 대회와 재즈 레코드 수집에 대한 이야기들과, 반대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컴퓨터와(놀랍지만 하루키는 이 때부터 애플 매니아였단다!) 패션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가득 실려있다. 맨날 추레할 것만 같았던 하루키가 젊었던, 그리고 어렸던 시절부터 정장에 대해 이렇게 확실한 철학이 있었을 줄이야. 그러면서 신인상 시상식 때는 마트에서 산 녹색 양복을 대충 빨아입고 나갔단 말이야? ^^;
. 무엇보다도 머리 한 번 깎았다고 비참해지는 상황에 내몰리는(^^;) 것까지는 피해야겠기에 미용실이라도 가야겠다는 현실과, 끝까지 '사내아이'로 남고 싶기에 이발소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이상이 정면 충돌하는 헤어컷 방랑기(....)는 이 책의 백미.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지, 그리고 패자는 무슨 말을 남기며 사라져 갈 것인지. 꼭 읽어보기를 추천. :)
나는 젤다(피츠제럴드)의 그림을 보면 언제나 예술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젤다가 그린 대부분의 그림은 훌륭한 영감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거기에 뭔가 아주 소중한 것이 표현되어 있다는 걸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또 그 그림은 아주 재능이 뛰어난 사람에 의해 그려졌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그림들은 상당히 예술적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작품이 될 수는 없다. 그 두 개의 세계를 가로막고 있는 건 아주 얇은 벽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엄연히 벽이 존재한다. 그런데 젤다의 그림은 그 벽은 넘어서지 못했다. 젤다는 문장에 있어서도,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열중했던 춤에 있어서도 그 벽을 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스콧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젤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젤다는 무력감 속에서 광기의 세계로 가라앉게 된 것이다. 굉장한 재능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적절하게 뽑아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지 못한 인생은, 젤다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 p. 70. 나와 비슷한 미국의 같은 세대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