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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Aug 11. 2024

왜 유독 강남에서 걸으면 진이 빠질까 :)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유현준(을유문화사)  ●●●●●●●●●○


우리는 기억 속에 변화가 없는 집에 살기 때문에 더 TV를 바라보는 것이다.




   경험의 밀도를 필자가 계산해보니 '명동거리 = 가로수길 > 홍대 앞 피카소 거리 > 강남대로 > 테헤란로' 순이었다. 주요 지표를 살펴보면 최고 값을 갖는 명동 거리와 가로수길은 최저 값을 갖는 테헤란로의 4.5배 정도 높은 경험의 밀도를 가지고 있었다. 수치를 해석한다면 가로수길은 테헤란로보다 4.5배 더 걷고 싶은 거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명동 거리와 신사동 거리는 각각 강북과 강남의 대표적인 걷고 싶은 거리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정량적인 수치와 정성적인 느낌이 비교적 비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행자의 체험으로 보았을 때 명동 거리와 가로수길이 2.5초당 채널이 바뀐다면 테헤란로는 11초당 채널이 바뀌는 TV에 비유될 수 있다.

                                                                                                                                        - p. 31. 공간의 속도.




   . 업무 상 강남을 구석구석 돌아다닐 일이 많다. 가장 북쪽의 압구정로데오 거리부터 시작해서 일을 시작하면서 여기도 강남이었다는 걸 알게 된(^^;) 수서역 남쪽 세곡동에 이르기까지 이제 웬만한 거리는 거의 안가본 곳이 없는데, 그러다보니 자연히 느끼게 된 게 콕 집어서 산이라고 부르는 게 몇 개 없을 뿐 의외로 일반 동네도 고저차가 상당히 심하고, 교통량이 많은데다 그 옆에 격자식으로 짜여진 대로가 많다보니 인도변은 무척 시끄럽다. 그래서 걷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도 강남에서 걸으면 유독 진이 빠진다. :)


   . 이 책은 그런 직관적인 이유에 더해 강남이 걸을 맛(?!)이 안나는 이유를 분석을 통해 제시한다. 몇몇 골목들을 제외하면 강남의 인도 옆에는 대부분 '깔끔한' 대형빌딩들이 서 있다. 아니면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한 블록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거나. 이런 빌딩이나 아파트 단지들은 대부분 울타리나 담으로 외부인과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걷는 사람들과는 별다른 접점이 없다. 그렇다고 딱히 자연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 결과 언제, 어디를 걷든 간에 장면이 바뀌질 않는다. 하늘이나 카메라로 넓게 조망하기엔 멋있지만, 정작 그 속에서 걷기엔 영 재미가 없다.  





   출입구가 두 개 나와서 결과적으로 선택의 경우가 두 번 나오게 되면, 둘 다 안들어가고 지나치는 경우, 앞의 가게만 들어가는 경우, 뒤의 가게만 들어가는 경우, 두 가게 모두 들어가는 경우, 총 네 번의 이벤트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따라서 상점의 수가 'n'이라면 보행자가 겪을 수 있는 이벤트 경우의 수는 '2n'이 된다. 다양한 경우가 있다는 말은 보행자가 다른 날 다시 같은 거리를 걷더라도 다른 거리를 체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뜻함과 동시에 하루를 걷더라도 다양한 이벤트를 만날 경우의 수가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위거리당 출입구의 수는 거리 체험과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 있다.

                                                                                                             - p. 25. 명동엔 왜 걷는 사람이 많을까.





   . 유현준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살고 걸으며 지나치면서 느끼던 불편함과 위화감을 설명한다. 왜 산토리니나 유럽의 도시들에 비해 한국의 도시들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지, 서울의 녹지면적이 결코 적은 게 아님에도 우리는 왜 서울에 공원이 부족하다고 말하는지, 결코 가격이 저렴한 게 아닌데도 왜 한국에서는 카페가 잘될 수밖에 없는지. 그전까지 수치로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모호하게 왠지 그런 거 같았던 느낌들에 대해 유현준은 기계적인 수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 '오밀조밀한 작은 가게들로 구성된 거리, 거주지역과 연결된 공원, 휑한 코엑스 광장과 광화문 광장의 재구성 등' 개선방안을 제시한다. 그런 그의 시각에는 철저하게 사람이 우선되어 있고, 그래서인지 그의 글은 낯설거나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읽힌다.




   마당이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이다. 주상복합에 아무리 거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거실의 인테리어가 매일매일 시시각각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당은 때로는 비도 오고, 햇살도 비치고, 눈이 내리기도 하고, 낙엽이 떨어지기도 한다. 아침의 동편 햇살을 받은 마당과 저녁 노을의 마당이 다르고, 밤이 되어 어두운 달빛을 담은 마당은 또 완전히 다르다. (중략) 마치 마당은 매일매일 벽지와 가구가 바뀌는 거실이라고 할까? 그렇기 때문에 단순하게 고정되어 있고 매일 TV보는 행위 외에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거실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 속에 변화가 없는 집에 살기 때문에 더 TV를 바라보는 것이다. 적어도 TV 속에는 드라마 속에서 이벤트가 일어나고, 장면이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큰 화면의 TV를 사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아마도 벽면 크기만 한 TV가 나올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 p. 194. 우리가 TV를 많이 보는 이유.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는 발전했지만 국토 면적이 작아서 공간적으로 제한이 있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사적인 공간에 대한 욕구는 높아지지만 실제 개인 주거가 그 사적인 공간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성인이 되어서도 결혼 전에는 부모와 함께 산다. 그래서 친구를 편하게 집으로 불러오기 힘들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기만의 거실이 없기에, 부족한 거실을 대체해 줄 카페가 많이 생겼다. 카페는 우리의 파트타임 거실인 것이다.

                                                                                                                   - p. 230. 카페와 모텔이 많은 이유.


   이처럼 걷고 싶은 거리는 결국에는 얼마나 자주 다양한 가게가 들어서 있느냐의 물리적 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대형 콤플렉스 건물(문화상업복합시설)을 만들더라도 거리와 접한 면에는 작은 소규모 가게들이 많이 배치되도록 디자인해야 하는 것이다.

                                                                                                             - p. 31. 명동엔 왜 걷는 사람이 많을까.


   광화문 광장이 시위의 장소가 되는데는 광화문 광장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은 세종대왕 상이나 광화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적당한 장소이다. 하지만 바람 불고 자동차 소음이 심한 그곳에서 증명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도, 갈 곳도 없다. 특별한 거리를 만들려는 의도로 유럽처럼 돌로 포장을 한 도로는 자동차의 소음을 더욱 크게 만들 뿐이다.

                                                                                                                              - p. 282. 죽은 광장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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