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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Aug 10. 2024

악인이어서, 어리석어서로 끝내선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한국고대전쟁사 3권. 부흥운동과 후삼국 - 임용한  ●●●●●●●●●●



견훤은 그물에 갇힌 고기가 아니라 마당으로 뛰어든 호랑이였다.



   그런데 문경을 탈환한 견훤은 모든 사람의 예상을 깨고 영천으로 진격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고려군의 포위망과 후방 위협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포위망의 안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후백제군의 이동로를 보고받고 전황판을 그리던 장교는 경악했을 것이다. 

   견훤의 이동로를 표시하는 화살표의 연장선은 서라벌을 똑바로 가리키고 있었다. 견훤은 고려의 덫이나 모든 장군들이 우려하는 후방보급로의 차단 같은 건 완전히 무시하고는 그대로 신라의 심장부를 찔렀다. 견훤은 그물에 갇힌 고기가 아니라 마당으로 뛰어든 호랑이였다. 그는 늑대 무리와 호랑이의 싸움법이 어떻게 다른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견훤의 멍군이자 포효였다. 

   견훤이 전략적, 정치적 사고력은 부족했지만, 전술적 사고와 싸움방법을 찾아가는 데서는 탁월한 장군이었다. 고려군의 덫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이중의 양동작전이라 전선을 너무 벌렸다. 고려가 후백제보다 조금 부유하다고 해도 병력과 영토가 몇 배씩 될 리가 없다. 그래서 신라군까지 끌어들여야 했다. 그런데 한 개의 전선도 감당하기 버거워하던 신라가 웅주와 용궁으로 2개 부대나 출동시켰다. 다시 말하면 소백산 안쪽 신라의 내지에는 병력이 거의 없을 것이다. 

                                                                                                                          - p. 292. 호랑이가 싸우는 법.




   . 한동안 국방TV에서 진행하는 토크멘터리 전쟁사를 꾸준히 봤었다. 역사를 다룬 프로는 많디 많지만, 허준 MC의 활기차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산만하지 않고 역사 프로로서의 선을 지키는 진행, 정말 곱디 고운(^^;) 윤지연 아나운서, 밀리터리 덕후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하면서 역사 부분에 있어서도 거침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이세환 기자와, 박식한 지식을 풀어주는 건 물론이고 이런 프로가 으레 빠지는 정치적인 신파나 역사적인 편견, 극단으로 치닫는 주장들을 철저하게 검증하고 사실에 기초한 종합적인 시야를 제시하는 임용한 박사의 합이 정말 잘 맞는 프로그램이다보니 뒤늦게 보기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는데도 1차세계대전을 다룬 1화부터 수백화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정주행하고 한 주 한 주 방영분을 따라갈 수 있었다.


   . 그러던 중 아쉽고도 뜬금없이(....) 프로그램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종영되었고, 토크멘터리 전쟁사를 보고나니 그전까지 어렴풋이 느끼던 다른 역사 교양 프로그램의 단점이 너무 뚜렷하게 눈에 들어오다보니 굳이 이런저런 방송을 보는 대신 임용한 박사가 쓴 한국사 책을 구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은 고려 이전의 시대를 다룬 고대전쟁사 시리즈 중에서도 나당전쟁에서 태조왕건(^^;)까지를 다룬 마지막 권인데,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고수고당 전쟁보다는 세세하게 알려진 게 적은 나당전쟁과 통일신라의 역사를 읽고 싶어서 굳이 1, 2권을 제끼고 먼저 3권을 읽기 시작했다. 





   비뇌성이 비뇌역 즉 안성 일대라면 우리가 지금껏 생각했던 것보다 궁예가 일찍 적극적으로 영토 확장을 시도한 셈이 된다. 또한 궁예의 전술적 대담성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는 양길의 원주를 피해 철원에서 개성, 김포 지역으로 진출한 뒤에 중부 지방으로 내려오는 대표적인 통로인 한성 - 이천, 또는 광주를 거쳐 안성으로 진출했다. 소심한 양길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기동이었다. 이 진격은 양길이 역으로 궁예의 근거지인 철원을 역습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다. 뱀이 서로 꼬리물기 시합을 벌이는 것과 같은 전술이다. 이런 싸움에서는 빠르고 대담한 쪽이 이긴다. 소심한 전략가일수록 이런 기동은 무모하고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놀라거나 화를 내거나 타이밍을 놓친다. 원래 전술의 제1법칙이 상식대로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 p. 199. 부석사의 칼자국.





   . 그리고 꽤 놀랐다. 책은 삼국사기 등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몇 줄 안되는 빈약하고 앙상한 기록에서 멈추지 않고 이를 뼈대로 삼아 유적과 교차사료를 통해 차례차례 시실과 날실을 짜나간다. 여기에 수차례의 답사를 통해 파악한 현장의 지리와 지형에 대한 설명이 더해지면 사료의 몇 줄 안되는 내용은 어느 덧 하나의 장면이 되어 있고, 거기에 전쟁과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통찰을 통해 생명력이 불어넣어진다. 그래서 딱히 허구나 극화가 없음에도 이 책의 스토리텔링은 빼어나고, 챕터가 끝나기 전까지는 여간해선 눈을 떼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 수십년간 김유신 형제들은 전쟁을 수행해 왔고, 수많은 용사들과 병사들을 희생시켜 왔다. 지휘관은 죽을 줄 알면서도 병사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려야 하고, 부당한 희생을 강요하는 자리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에게 그 부당한 순간이 닥쳤을 때는 일부러라도 더더욱이 회피해서는 안된다. 얍삽하게 생각하면 그래야 병사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적 행동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이해타산을 떠나서 진정한 리더라면 그 순간을 각오하고 헌신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김유신 집안은 통일전쟁을 통해서 망명왕족에서 신라 최고 가문으로 올랐고, 자신의 조카가 신라의 국왕이 되었다. 원술로 보면 억울하겠지만, 김유신의 입장에서 보면 원술의 행동은 그가 그동안 내렸던 수많은 명령들, 희생들에 대한 배신과 다름이 없다. "결국 당신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병사들을 희생시켰고, 당신의 가족에 대해서는 이중적 잣대를 적용했구나"라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 p. 47. 초조한 계절.


   왕건을 불러놓고 궁예는 이런 유치한 쇼를 했다. 한마디로 부하에게 대권을 맡기기에 앞서 길들이기를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를 읽고 궁예를 미치광이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 그는 정신이 멀쩡했다. 다만 사람을 다루는 수준이 낮았을 뿐이다. 궁예의 진정한 문제는 산채 하나를 차지하고, 도적떼나 광신도 집단에게 써먹을 수법으로 나라를 다스리거나, 왕건 같은 인물을 다루려 했다는 것이다. 

                                                                                                                                      - p. 256. 궁예의 변신.





   . 또한 임용한 박사의 책에서는 그전까지 선악과 교훈의 좌표축에서 움직이던 인물들이 오늘날의 우리처럼 각각의 이유와 판단을 가지고 움직인다. 임용한 박사는 비록 시대와 사상은 다를지언정 사람은 과거에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러니 지금의 우리가 상황에 따라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처럼 역사의 인물들 역시 그랬을 것이라는 시각에서 그들이 행동하는 이유를 찾아나간다. 결코 그는 악인이니까, 그는 바보였으니까로 끝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와 같고, 우리도 그렇게 했을 행동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병력의 용도는 다양하니까 엉성한 군대라도 사용처는 있다. 그러나 핵심 전력의 전투력과 전술 기동까지 훼손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소심한 지휘관이 안전한 전투에 집착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전술이 병력이 구속된다. 전선을 예상하고 배치 장소를 정하고, 공격부대와 후원부대의 이치, 공격지점과 공격선, 방어와 보급, 이동과 진격로를 정한다. 이렇게 작전지도만 들여다보면서 병력이 모두 배치되기를 기다리다 보면 짜증만 늘어간다. 교통도 좋지 않고 통신과 관리조직도 허약한 시대다. 병력이 과도할수록, 작전지도가 완벽할수록 병력을 모으고 배치하는 데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 

   이렇게 지도 상의 전쟁놀이에 몰입해 버리면 병력이 다 도착하고 필요한 곳에 배치하기 전에는 꼼짝도 않게 된다. 늦게 오는 부대, 엉뚱한 곳으로 간 부대, 기다리다 풀어진 부대, 짜증내고, 독촉하고, 지휘부는 소란하고 정신이 없다. 입으로는 공격은 신속하고 과감하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모든 배치와 준비가 완료된 다음이라는 전제가 따른다. 여기서부터 패배가 준비되고 있다. 

                                                                                                                               - p. 200. 부석사의 칼자국.


   누설되지 않는 쿠데타 계획은 없다. 구조적으로 너무 많은 사람이 얽히고, 쿠데타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반대편도 알고 긴장하고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쿠데타란 어두운 뒷골목에서 뒤통수를 내려치는 행위가 아니라 링 위에서 권투선수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과 같다. 누가 먼저 가격에 성공하느냐의 싸움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쿠데타가 성공한 경우는 기습에 성공해서가 아니라 상대편이 주도 세력보다 느리고 둔하게 움직였던 덕분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쿠데타를 암살과 같은 밤의 음모로 착각한다. 

                                                                                                                                  - p. 109. 영광의 장군들.


   선종(궁예)이 "뺏은 재물을 공평하게 나누고, 부하들과 함께 뒹굴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그가 민중적 지도자, 심지어는 민주적 혁명가였다고 추정하는 견해들이 있다.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기록만으로는 '선종의 민주투사론'을 뒷받침할 증거가 되지 못한다. 

   이런 오해가 발생한 이유는 점잖은 학자분들이 도둑의 세계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명한 캐리비안의 해적들을 예로 들면 그들은 선장이 죽으면 나름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장을 뽑았고, 약탈물을 나눌 때도 상당히 공정한 분배 규정이 있었다. 그 바람에 이들 또한 불공평한 세상에 염증을 느껴 바다로 나간 리버럴이나 '민주혁명 세력'으로 보는 섣부른 견해도 있는데, 그건 아니다. 약탈과 폭력이 목적인 집단에서 권위와 규율, 리더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방법, 특히 약탈물의 공정한 분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눈앞의 이익과 적절한 재분배말고는 탐욕으로 뭉친 폭력집단을 통제하고 충성을 유지할 수단이 없다. 

                                                                                                                               - p. 189. 부석사의 칼자국.


   광주에서 도로상으로도 30여 킬로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나주가 반견훤 세력의 본거지가 된 것이다. 나주를 점령하지 못하는 이상 견훤은 전남의 남서 지역을 장악할 수가 없었다. 그정도를 가지고 재앙이라고까지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으나 나주의 진짜 중요성은 영산포, 즉 영산강 수로에 있다. 남해안에서 목포를 경유하여 내륙으로 들어오는 수로의 종착지이자 제일 중요한 포구가 나주의 영산포였다. 나주를 장악하지 못함으로 해서 견훤은 영산강 수로를 상실했다. 이 수로가 살아있었다면 견훤은 영산강을 이용해서 비옥한 평야지대인 전남 서남부의 병력과 물자를 신속하게 광주로 집결시킬 수 있었을 것이고, 전주와 마찬가지로 광주를 자신의 최대 거점으로 육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 p. 217. 나주의 반란과 신라의 각성.


   두 사람이(궁예와 견훤) 세력 확산에 실패한 원인은 반군 지도자에서 통치자로의 변신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친위세력과 동료집단에 지나치게 의존했고, 국가의 구조와 운영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과 개인적인 경험으로 세상을 보았고, 무대가 바뀌었음에도 이전의 방식을 바꾸지 못했다. 궁예가 신정정치를 추구한 것이나 견훤의 맹목적인 신라 공격과 서라벌 약탈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것이 그들을 파멸로 몰았다. 

                                                                                                                                  - p. 345. 일리천의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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