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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Jul 26. 2024

결정적이지만 이제는 잊혀진 냉전의 이야기들

냉전의 지구사 - 오드 아르네 베스타(에코리브르) ●●●●●●●●◐○


소련은 미국을 의식한 군사비 지출을 감당할 수 없었다.



   승리는 중대한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1984년 초 케이시가 참모진에게 설명한 바에 따르면 현 정세는 다음과 같았다. "소련은 엄청나게 과도하고 확장되어 있으며, 위험에 처해 있다. 만약 미국이 소련을 계속 압박하고 마침내 한 지역에서라도 승리한다면, 이는 [미래의 대안은 공산주의에 있다는] 신화를 산산조각 낼 것이다. 그리고 소년은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케이시는 니카라과에서 소련을 무너뜨릴 한 방을 기대했지만, 1983~1984년에 이르면 중미개입을 둘러싼 미국 내 반발과 콘트라의 의심쩍은 전투력을 고려했을 때 아프가니스탄을 더 나은 대안으로 보고 있었다. 케이시는 동료에게 "여기에 아프가니스탄의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주로 크고 나쁜 미국인이 현지인을 때려잡는 것처럼 그려진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완전히 반대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러시아인이 작은 애를 때려잡는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우리의 전쟁으로 만들지 않는다. 무자헤딘에게는 필요한 모든 동기가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도움을, 그저 더 많은 도움을 주기만 하면 될 뿐이다.

                                                                                                                - p. 572. 1980년대 : 레이건의 공세




   . 2차대전으로 종식된 시작된 미소 냉전의 역사 중 결정적이지만 이제와서는 잊혀진 사건들에 대한 꼼꼼한 이야기. 그래서 베트남 전쟁은 짧게 지나가고, 쿠바에 대해서는 쿠바독립전쟁이 빠지고 카스트로 정권이 수립된 후 공산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타국에 병력을 파견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그 여백을 앙골라,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열전'이 채운다.




   제2차 세계대전 세대이던 많은 소련 지도자들이 보기에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의 성공적인 개입을 통해 소련은 이제 진짜 강대국, 세계 도처에 자유자재로 개입해 중대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열강으로 자리매김했다. (중략) 아프리카의 뿔과 앙골라의 가장 큰 차이는 소련이 먼 곳의 분쟁에서 두 주권국가 간 관계의 중계자이자, 궁극적으로는 이 두 국가의 운명을 결정지은 존재였다는 점이다. 국제관계에서 처음에는 영국, 그 다음에는 미국이 올라섰던 위치에 마침내 소련이 서게 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소련은 미국에 비견하는 완전한 강대국이었다.

                                                                                     - p. 452. 사회주의 전망 : 에티오피아와 아프리카의 뿔




   . 그렇다고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이 결코 역사의 변방은 아니며, 냉전 시기에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야기인 것에 가깝다. 앙골라와 남부아프리카 지역에 성공적으로 군사력을 투사하면서 소련은 중동전쟁에서 실추된 영향력을 회복하고 미국과 본격적으로 경쟁을 시작했고, 이런 소련의 위상은 에티오피아에서의 공산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극에 달한다. 그러나 이런 영광은 아프가니스탄의 무능한 공산주의 정권을 지원하다 내전의 수렁에 빠지면서 급격히 빛을 잃게 된다. 그리고 수렁에 빠진 소련에겐 더 이상 미국을 상대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고, 그것은 곧 냉전의 종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소련이 개입하기 전인 1979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이미 아프가니스탄 공산주의는 자멸한 상태였다. 공산주의보다 더욱 더 강력하고 대중적인 인기 또한 높은 혁명 세력인 아프가니스탄 이슬람주의자의 부딪친 아프가니스탄 공산주의는 안정적인 동맹 세력을 확보하는 국내 및 외교 정책을 입안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아프가니스탄 공산 정권은 내전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소련의 대 아프가니스탄 기본 정책의 실패는 스스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정권이 소련의 개입을 통해 생존하고 궁극적으로는 성공에 이르리라고 믿었다는 점에 있다.

                                                                                      - p. 527. 이슬람주의자의 도전 :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 우리에게 이 시기 소련의 역사는 흐루시초프의 '해빙'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사이에 '반동의 시기가 있었다'는 한 줄 정도로 인식된다. 이는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일 수도 있고, 같은 시기 우리나라나 중국의 역사가 훨씬 역동적이고 관심을 가질만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 시기에 소련은 그들이 가진 힘을 세계 곳곳에 투사하면서 역사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시기 소련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냉전사 역시 알 수 없고, 페레스트로이카를 고르바초프의 개인적인 결단으로 오인하게 된다. 그래서 그 시기를 소상하게 다루는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 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소련은 미국을 의식한 군사비 지출을 감당할 수 없었다. 국가 지출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군사비 지출로 인해 경제의 자원과 생산성을 고갈시키는 방식으로 소련은 약화되었다. 1970년대 말부터 경제 성장이 전체적으로 둔화되고 있는데도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취할 수 있는 예산상의 선택지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당시 소련 경제는 외부 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세계 시장으로의 천연자원 수출을 통한 외화 수입에 크게 의존했다.

                                                                                         - p. 644. 결론 : 혁명, 개입, 그리고 초강대국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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