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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Jul 07. 2024

대항해시대 200년 전, 이미 세계는 연결되어 있었다

유럽 패권 이전 - 재닛 아부-루고드(까치글방)  ●●●●●●●●●●


세계체제가 어느 정도로 통합되어 있었는가는
어떤 부분에서 발생했던 파괴적인 사건들이
나머지 부분에서 심각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정도에 의해서
가장 민감하게 표출된다.



   그 세 갈래 길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중앙아시아의 거대한 대륙을 가로지르는 북방 노선, 바그다드, 바스라, 페르시아 만을 통해서 지중해를 인도양과 연결하는 중앙 노선,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 카이로 - 홍해 지역을 아라비아 해와 인도양에 연결하는 남방 노선이었다. 12-13세기에 이 노선들은, 전쟁과 평화라는 역설적인 공조를 통해서 원거리의 교역 상대들을 서로 접촉하게 만듦으로써 점점 더 그물망처럼 이어지게 되었다. 이 세 갈래 길은 로마가 동방으로 향하는 관문을 통제했던 이래 처음으로 13세기 후반에 모두 다 기능하게 되었다. 

                                                                                                                   - p. 163. 동방으로 가는 세 갈래 길




   . 유럽인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단절되어 있던 세계를 하나로 이었던 15세기의 대항해시대와는 정반대로, 13세기의 세계체제는 이미 연결되어 있던 기존 세계에 중세의 혼란에서 벗어난 유럽세계가 뒤늦게 끼어들면서 완성되었다. 이미 아랍상인들은 인도양과 말라카 해협을 넘어 중국은 물론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에까지 진입하고 있었으며, 남아프리카의 동쪽해안에 거주지를 만들고 서아프리카의 말리 해안의 왕국들과 교류하고 있었다. 호라즘과 몽고가 등장하기 전까지 혼란스러웠던 중앙아시아 내륙과 혼란의 초기 중세를 간신히 벗어나 봉건제의 싹을 틔우고 있던 서유럽을 제외하면, 기존의 다른 체제들은 원활하고 생기있게 연결되어 있었다. 




   경제적 통합의 증대와 문화적 결실이라는 13세기의 두 가지 특성은 서로 무관하지 않았다. 기술적, 사회적 혁신들은 잉여물들을 산출했으며, 이는 다시 국제적으로 교환되어 발전을 한층 가속화시켰다. 항해술과 정치적 수완이 함께 향상되면서 멀리 떨어진 사회들 사이의 교류를 촉진했으며, 이는 더 많은 잉여를 낳았다. 모든 지역에서 번영은 - 최소한 상층부에서는 - 고급 문화를 만들어냈다. 

                                                                                                               - p. 24. 세계체제의 형성에 대한 연구




   . 그리고, 13세기에 이르러 서유럽이 상업과 공업에 눈을 뜨고, 호라즘과 몽골이 중앙아시아에 난립하던 각 부족들을 통합한 후 두 세력의 결전을 통해 몽골이 내륙의 패자가 되면서 바다와 내륙 양 쪽에서 구대륙은 완전히 이어지게 된다. 마르코 폴로를 비롯한 이탈리아 상인들은 중앙아시아를 통해 몽골 제국과 직접 거래했고, 동남아시아는 인도와 중국을 연결하는 중개지로서 번성하고 있었으며, 몽골의 침략으로 호라즘과 아바스 왕조가 멸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 상인들은 오히려 유럽과 몽골, 인도를 중개하며 '색목인'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적극적인 활약을 보였다. 인도는 아랍과 손을 잡고 경제적, 군사적으로 교류를 해나갔고, 뒤늦게 세계체제에 참가한 서유럽 역시 초기엔 상파뉴, 후기엔 플랑드르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다른 세계체제와 연결되었다. 더군다나 13세기의 통합된 세계체제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정치적으로는 전쟁과 침입으로 인해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형성되었지만, 경제적으로는 각자의 체제가 독립성을 기반으로 한 상호관계를 형성하면서 '엇비슷하게나마 평등한' 교류를 이뤄냈다는 점이었다. 


   . 그렇게 세계체제가 하나로 원활하게 작동되던 상황에서 그 흐름은 갑자기 끊기고 말았다. 몇몇 작은 연결고리는 살아남았지만 지역과 지역들을 이었던 거대한 연결고리는 대부분 단절되었고, 각각의 체제는 자신들의 지역에 틀어박혀 쇠퇴하거나 기껏해야 불평등한 관계속에서 삐걱거리며 불안정한 연결을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게 200여년이 지나고나서야 간신히 '대항해시대의 유럽인'들을 중심으로 한 일방적인 연결이 되살아났다. 그나마도 유럽체제가 넘볼 수 없던 힘을 가진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문을 걸어잠그거나 극히 소규모의 교류만 허용하는 것이 고작이었기에 그 연결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에 몽골의 멸망 이후 티무르의 원정, 투르크의 통제로 봉쇄된 내륙 루트는 사실상 '길'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신대륙'의 발견은 아메리카 대륙을 세계체제에 편입시킨 것이 아니라, 그곳에 존재하던 기존의 체제를 말살하고 유럽체제의 수탈 배후지를 만든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또다시 300여년이 지나고 나서야, 세계는 증기선과 화력을 앞세운 '제국주의 서양'의 압도적인 힘 아래 통합되었고, 그 불평등한 결과물은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세계체제들의 융성과 쇠퇴는 민족, 제국, 문명의 성쇠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체제는 통합이 강화되면 융성하고, 오랜 통상로들을 따라 이루어지는 접속이 감소하면 쇠퇴한다. 그렇지만 일정한 역동적인 통합의 활기가 사라질 때에 세계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어설픈 것이다. 그렇다기보다는 오랜 부분들이 계속 살아남아, 그로부터 재구성이 진전되는 재료들이 된다.

                                                                                                                - p. 400. 13세기 세계체제의 재구성




   . 재닛 아부-루고드는 체제들간의 연결이 붕괴되고, 몇 세기가 지나서야 - 그것도 일방적이고 불완전한 일부 연결만이 이뤄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탐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책은 서유럽, 지중해, 중동,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등 각 체제의 발전과 쇠퇴를 연구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쇠퇴와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역설적이게도 몽골제국이 구대륙 전체를 이으면서 이로 인해 페스트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 각각의 체제가 연결을 지탱할 힘을 잃어버린 것이지만 - 어찌보면 바벨탑을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 그 외에도 각각의 체제가 너무 빠른 발전의 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퇴보했다는 것도 생각해볼만한 부분이다. 


   . 이렇듯 저자는 15세기의 대항해시대는 완전히 백지에서 새로운 그림을 그려낸 것이 아니라, 이미 13세기에 한 차례 존재했던 통합된 세계체제에서 살아남은 체제가 다른 체제들의 유산을 물려받아 그 유산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것이라고 끝을 맺는다. 흑사병과 세계체제의 단절을 버텨낸 유럽세력은 다시금 다른 방향에서 연결을 시도할 수 있었고, 강한 체제를 상대로는 우회하고 쇠퇴한 체제에 대해서는 우월한 위치를 점해 가면서 유럽이 중심이 된 일방주의적 체제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도유망한 상태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14세기 중반을 거치며 그 체제는 파편화되었고, 많은 부분들이 동시에 쇠퇴해버렸다. 그리하여 다양한 대안적 노선을 가지고 있던 하나의 순환체제가 같은 세기 말엽에는 좀 더 협소한 지역만을 연결시킬 수 있게 축소되었고, 수많은 틈새들이 출현했다. 14세기 후반에 거의 공통적으로 경험했던 경제적 곤경은 그 체제가 해체되는 전조였다. 16세기 초 새로운 주자인 포르투갈이 세계 통합이 다음 국면을 개척하기 위해서 인도양에 진출했을 때 선행 체제의 대부분은 이미 사라져버린 후였다. 

                                                                                                               - p. 62. 세계체제의 형성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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