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판토 해전 - 시오노 나나미(한길사) ●●●●●●○○○○
"그래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하. 오직 그뿐입니다!"
모든 이의 눈이 중앙에 앉아 있는 돈 후안에게로 향했다. 설령 여기서 돈 후안이 반대할지라도 2대 1의 결과가 되어 출진이 정해질 터이지만, 지금까지 에스파냐 쪽이 보여온 행동으로 보건대 억지를 부릴 우려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총사령관의 한 표는 무게가 다르다.
젊은이의 창백한 얼굴은 좀 전부터 붉은 기를 띠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완전한 홍조를 띠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출진한다." - p. 148. 메시나, 1571년 8월.
. 로도스 섬 공방전으로부터 50년, 그 이전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부터는 120년. 여전히 유럽은 오스만의 공세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육지에서는 모하치 전투의 참패로 인해 헝가리가 한순간에 멸망하면서 이제 오스만 제국을 막아낼 상대는 신성로마제국 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유럽이 우위에 있던 바다에서도 술레이만 대제가 북아프리카 해적들을 포섭하면서 오스만 제국은 프레베자에서 베네치아와 에스파냐 연합함대를 격파했다. 이제 바다에서도, 육지에서도 유럽 세계는 완전한 수세에 몰린다. 그나마 가장 위험했던 순간, 신성로마제국과 몰타 기사단이 격전 끝에 각각 육지와 바다에서 빈과 몰타를 지켜내고, 술레이만 대제의 눈이 동쪽의 페르시아와 인도로 향하면서 최악의 사태만은 막아낼 수 있었다.
"투르크와의 외교 교섭은 유리공을 서로 던지며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단 상대가 아무리 세게 던져도 이쪽은 그럴 수 없으며, 그렇다고 공을 팽개칠 수도 없습니다."
- p. 44. 콘스탄티노플, 1569년 가을.
"국가의 안정과 영속은 군사력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외국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평가와 외국에 대한 의연한 태도에 의지할 때도 많은 것입니다.
최근 수년 간, 투르크인은 우리 베네치아가 결국엔 타협을 청하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예를 갖춘다는 외교적 필요를 넘어선 비굴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네치아는 투르크의 약점을 지적하기를 꺼렸으며 베네치아의 강점을 보여주기를 게을리했습니다.
결국 투르크인의 타고난 오만함에 제동을 가할 수 없게 되어 그들을 불합리한 정열로 내몰게 된 것입니다. 피정복민이자 하급관리에 지나지 않은 그리스인에게 들려 보내온 편지 한 통만으로 키프로스를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놓아둔 것은 실로 베네치아 외교의 수치 외에 다른 무엇도 아닙니다."
- p. 268. 레판토 전사들의 그 이후.
. 그런 상황에서 술레이만이 죽고 그의 아들 셀림이 술탄의 자리에 오르며 다시 한 번 유럽과 오스만은 격돌하게 된다. 프레베자 해전의 패배 이후 오스만에게 고개를 숙인 채 웬만한 도발은 참아내려던 베네치아였지만 수백년간 요충지로 지켜오던 키프로스에까지 오스만이 손을 뻗는 것에는 더 이상 참아낼 수 없었고, 여기에 에스파냐가 다시 한 번 가세한다. 메메드 2세 이후 지중해를 무대로 한 수백년간의 길고 긴 싸움에 종지부를 찍는, 레판토 해전이 막을 여는 것이다.
레판토 해전은 제일 먼저,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
에서 출발해 이어,
"피를 흘리는 정치"
로, 최종적으로는 다시,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
으로 끝난 역사상 한 사건이었다. 다른 모든 전쟁이 그랬듯이.
- p. 27. 프롤로그.
. 준비 과정을 제외하고 본격적인 전투기간만을 봤을 때 콘스탄티노플 공략이 50일, 로도스 섬 공방전이 6개월인데 비해, 레판토 해전은 하루 - 단 4시간 만에 끝이 난다. 이렇게 이야기가 한 점에 집중될 때야말로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극적인 전개가 빛을 발한다. 여기에 오스만에 대항하는 연합함대의 총대장은 그 출생에서부터 그늘을 띨 수밖에 없는 20대의 서출 귀공자. 이거야말로 학자들이나 다른 역사전문가들에 비해 여사가 가장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 그래서 이 이야기는 여사의 전쟁 3부작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며 박진감이 넘친다. 특히 결정적인 결단을 내리는 돈 후안, 대전투를 앞두고 수많은 배들 사이를 지나며 병사들의 환호 한가운데서 함대를 격려하는 돈 후안, 전투가 끝난 후 목숨이 다해가는 바르바리고의 운명을 안타까워하며 그의 손을 감싸쥐는 돈 후안, 돈 후안, 돈 후안.... 이 책에서 돈 후안에 대한 시오노 나나미의 묘사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영화의 주인공의 그것을 보는 듯하고, 그 열정은 체사레 보르자를 묘사하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비록 그에 비해 레판토 해전이 차지하는 역사적 의의에 대한 고찰은 빈약하고, 무비판적으로 베네치아를 옹호하고 에스파냐를 질타하는 안이한 시각은 아쉽지만(그런 점들은 여사 말년에 쓴 '로마 멸망 후의 지중해 세계 하권'에서 많이 보완되어 있다) 그렇더라도,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장 잘 풀어낸 책이라는 건 확실하다.
진형을 갖춰 뱃머리가 나란히 늘어선 함대 앞을 총사령관 돈 후안이 탄 소형 쾌속선이 지나갔다. 스물여섯 살 젊은이로서는 최종 점검보다는 전사들을 격려하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은색으로 빛나는 갑주로 무장한 이 훤칠한 키의 총사령관은 소리를 질러대며 병사들을 격려했다. 배 위에 늘어선 귀족, 기사, 병사들, 그리고 노잡이들에게서도 거대한 함성이 일어났다. 함성의 물결은 좌익에서 우익으로 번져갔다.
돈 후안은 베니에르의 배 앞까지 왔을 때 서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던 베네치아의 노장이 군사들 속에 있음을 알아보고 이탈리아어로 외쳤다.
"무엇 때문에 싸우려 하시오?"
갑주는 입었지만 투구는 쓰지 않은 베니에르는 커다란 석궁을 왼손에 들고 백발을 바닷바람에 날리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하. 오직 그뿐입니다!"
- p. 190. 1571년 10월 7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