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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라는 단어만으로 명쾌하고 충분했던 시대가 있었다

파우스트 - 괴테(문학동네) ●●●●●●○○○○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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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나는 이러한 인간의 무리를 바라보며,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더불어 살고 싶다.

그러면 순간에다 대고 나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내가 이 세상에 이루어놓은 흔적은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이러한 드높은 행복을 예감하면서

지금 나는 최고의 순간을 맛보고 있노라.

- 2권, p. 432.



. 얼핏 욥기를 떠올리게 하는 이 희곡의 핵심이자 논점이 되는 부분은 '왜 파우스트가 멸망하지 않았는가?'이다. 파우스트는 분명 계약 당시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내가 순간을 향하여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라고 말한다면 '자신은 꽁꽁 묶여서 기꺼이 멸망할 수 있으며', 자신이 한 순간을 고집하게 된다면 자신은 '즉시 종이 될 것이며, 그것이 너의 종이건, 누구의 종이건 상관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함으로써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인간을 초월한 힘을 부여받았다.


. 그리고 파우스트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이 인류를 위해 진행하고 있는 대사업의 숙원이 달성되는 것을 꿈꾸며 순간에다 대고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라고 말해도 좋다고 했고, 그 순간 메피스토펠레스와 맺은 계약대로 파우스트의 시간은 멎고 그는 묶였다. 그러나 파우스트를 묶은 메피스토펠레스가 그를 영원히 종으로 부리려 했던 그 순간, 천사들이 내려와 파우스트의 영혼을 데려가고, 그의 영혼은 그레트헨의 기도를 받으며 천국에서 지복을 누리는 것으로 장대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 괴테는 책 속에서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하고 있지는 않다. 천사들이 파우스트를 데려가는 장면에서 그들은 메피스토펠레스와 논쟁함으로써 계약을 깨버리거나 신의 권위를 내세워 악마를 위압하지도 않는다. 단지 협잡에 가까운 느낌의 미인계로 메피스토펠레스를 농락하며 파우스트를 '탈취'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괴테의 시대에서는 이유보다는 그게 어떤 모양이든 악이 패배한다는 그 자체가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이 결말은 우리에게 어딘가 개운하지 않다. 우리의 시대에선 그 상대가 누구이건 간에 공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 어쨌든 다시 앞으로 돌아가 파우스트의 계약 장면을 들춰보면,


내가 편안하게 침상에 누워 허송세월을 한다면, 그때엔 나 당장 파멸해도 좋으리라!

너, 감언이설로 아첨하여 나를 속여서,

내가 나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다면,

너, 나를 환락으로 기만할 수가 있다면,

그것은 내게 최후의 날이 될 것이다!


혹은


내가 한 순간을 고집하게 된다면, 나는 즉시 종이 될 것이며,

그것이 너의 종이건 누구의 종이건 상관하지 않겠노라는 다짐은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계약조건과는 좀 다르지 않나 싶기도 하다. 자신의 쾌락이 아니라 인류의 행복을 위해 대사업을 벌이며, 자신의 편안한 모습이 아닌 행복하고 정의로운 인류의 모습에 만족하는 파우스트의 모습은 그가 맺은 계약과는 정반대가 아닌가 생각하게도 되지만, 그렇다면 굳이 이유를 대지 않고 천사들의 미인계를 동원해가며 어거지로 파우스트를 데려올 필요가. :)



.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그 시대라면 어떤 모양으로든, 악이 패배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논리를 통해 반박과 역전이 가능했다면 굳이 신이 개입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결국 신이 천사들을 보내어 파우스트를 데려왔다는 것 자체가, 다른 해석의 여지 없는 계약을 깨기 위해 신의 절대성이 개입한 것이고,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 그리고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괴테에게는 이런 신의 개입은 일고의 의혹도 제기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다만 그런 명쾌한 절대성이 당연시되던 시대의 가치관이 시간이 흘러서 우리에겐 받아들여질 수 없는 억지로 여겨지게 된 것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없는 이유를 찾아 납득하고자 하는 것 뿐 아닐까.




당신은 - 결국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지요.

수백만의 고수머리털로 만든 가발을 쓴다 해도,

굽이 한 자나 되는 높은 신발을 신는다해도,

결국 당신은 있는 그대로의 당신일 따름이지요.

- 1권, p.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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